[세상만사] 1과 ‘n분의 1’ 사이

국민일보

[세상만사] 1과 ‘n분의 1’ 사이

김나래 정치부 차장

입력 2020-05-29 04:02

전 지구를 덮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내미가 3월 한 달, 그리고 4월을 지나 5월에도 학교에 한 번 가보지 못한 채 집에만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3월 초반, 유튜브 삼매경에 방탄소년단(BTS) 덕질로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아이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봤다. 그마저도 석 달쯤 지나니 곤두섰던 눈초리에서 힘이 다 빠지고 코로나19로 학습 격차가 커질 것이란 뉴스에도 무덤덤해진다. 누군가 직장맘인 나에게 “그럼 아이는 누가 돌봐줘요”라고 물을 때마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우리 딸은 유튜브와 BTS가 키워요”라고 대답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그렇게 삶을 바꾸고 생각을 뒤흔든다. 무차별적인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저마다 ‘n분의 1’의 책임을 나눠서 지고 살아간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지역 사회 방역에 구멍 내는 상황을 보면서 어느 때보다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감을 무겁게 느낀다.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은 기본이다. 누군가는 자녀의 사교육을 포기하고, 어떤 이들은 종교 활동을 자제하며, 보고 싶은 이들을 덜 보는 각자의 방식으로 불편과 희생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K 방역’의 성공 뒤엔 믿음직스러운 질병관리본부장 및 헌신적인 의료진뿐 아니라 조용히 ‘n분의 1’의 도리를 다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었다.

새삼 깨닫게 된 ‘n분의 1’의 무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 중요해질 듯하다. 국가 방역뿐 아니라 작은 조직과 공동체에서도 n분의 1의 몫을 다해야 조직이 유지되고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다. 과거엔 특정한 개인 한 사람에게 막대한 권한을 주고 영웅처럼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길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험요인이 등장하고, 이로 인한 공포가 확산하는 시대엔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대응이 더 중요하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신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논란을 보면서 ‘n분의 1’을 떠올리게 됐다. 민주당과 시민단체 진영에선 30년간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헌신해온 여성평화인권운동가에게 언론과 국민이 지나치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도대체 누가 윤미향처럼 할 수 있느냐. 이러면 앞으로 위안부 운동은 누가 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 질문을 들으며 진짜 문제는 윤 당선인 1인에게 과도하게 주어졌던 권한과 그 역할에서 시작됐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윤 당선인은 n분의 1이 아니라 ‘n분의 n’, 그야말로 1로 존재해왔던 것 같다. ‘윤미향=위안부 운동’이란 등식이 성립되면서 그가 내리는 결정이나 단체 운영 방식, 운동 방향에 대한 견제나 비판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홀로 우뚝 존재해왔던 시간에 던져지지 못했던 질문과 의혹이 지금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그 질문에 답하고 결과에 따라 법적인, 도덕적인 책임을 지는 일 역시 윤 당선인 혼자 감당해야 한다.

비록 지난 30년은 그러했더라도, 지금부터 펼쳐질 위안부 운동의 다음 장은 달라지길 바란다. n분의 n을 도맡아줄 제2의 윤미향을 찾는 대신 n분의 1을 저마다 나눠서 책임지는 길이 있다. 위안부 문제와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 아픈 과거의 역사를 알리는 활동가, 외교적 해법을 찾는 정치인, 기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 운동을 지지해온 시민들, 그 발걸음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에 이르기까지. n분의 1을 기꺼이 짊어질 사람들은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