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이용수 할머니의 절규가 일깨운 것

국민일보

[국민논단] 이용수 할머니의 절규가 일깨운 것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

입력 2020-06-02 04:07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진땀 해명에도 불구하고 본인과 정대협·정의연을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증폭되는 분위기다. 개인 계좌로 모금된 후원금 유용 혐의, 안성 쉼터 고가 매입 의혹, 딸 유학자금 출처와 남편 운영 지역신문사 일감 몰아주기 의혹 중 어느 하나도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국회의원 당선인이 11일간 장부, 통장, 기록을 뒤져 준비한 게 고작 이거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30년을 통째로 돌아볼 필요가 있었을까? 그저 몇 개의 핵심 자료만 매의 눈으로 살펴봤어도 됐을 것을.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달리 보일 수 있다. 윤 의원의 개인 비리, 시민단체의 회계부정, 위안부운동의 현재와 미래, 한반도 미래를 둘러싼 이념 논쟁. 이렇게 다양한 접근 통로가 있는 만큼 사태는 복잡하고 그 무게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시민운동의 성공과 권력화가 눈에 들어온다. 국가 폭력과 부패가 만연했던 권위주의 토양에서 시민단체의 도덕적 순결함과 자기희생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됐다. 우리 사회는 투명해졌고 국민 기본권은 비로소 보호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정대협·정의연은 식민주의와 가부장제에 분연히 맞서서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를 세상에 알리고 법적 배상을 촉구했다. 수요시위는 절규를 희망으로 바꿨고, 소녀상은 세계시민의 마음속에 평화의 가치를 심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존엄성과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은 그렇게 일깨워졌고 또 회복돼갔다. 정의가 실현되고 보편적 인권이 자리 잡는 듯했다. 하지만 성공은 위기를 불렀다. 민주화 투사들의 정치권 진입 행렬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몸을 실었고, 여성운동 지도자들도 동참했다. 시민운동가들이 국가권력 일부가 되면서 애초에 대변하고자 했던 평범한 시민들과의 괴리는 점차 커졌다.

참여연대의 자기 조직 출신 감싸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비판 포기는 대표적 사례로 손색이 없다. 최근 참여연대의 검찰 보고서가 조국 수사를 인권침해로 규정한 것은 시민단체가 집권여당 싱크탱크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진중권 전 교수는 정의연·정대협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결국 피해자와 대리자가 괴리된 불행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정대협이 위안부를 이용했고, 국회의원이 돼 사리사욕을 챙기려 했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절규는 화가 난 할머니의 외침으로 폄하돼선 안 된다. 피해자와 대리자가 등진 아픈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 거다. 시민단체가 권력화돼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위급한 상황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이런 게 아니던가. 당사자가 자신의 언어와 감정으로 서운함을 표현하고 내친김에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며 역사의 의미를 깨닫고 공유하게 해야 한다는 새로운 지평의 운동을 제시한 것이다.

정대협 창립 멤버인 김혜원 선생은 정대협 본류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돌보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만원 한 장 쥐어준 적 없다”는 할머니의 증언, 안성 쉼터에 할머니는 없고 수련회 참가자로 넘쳐났다는 의혹, 전쟁범죄와 여성 인권으로 운동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정대협·정의연이 당사자 중심주의에서 점차 멀어져 스스로 엘리트화됐다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다. 여기에 윤 의원의 대표 시절 독선적 조직 운영, 위안부 운동에 참여한 소규모 시민단체들의 주변화가 맞물려 사태는 악화했다.

시민단체의 엘리트주의와 권력화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국제인권운동의 뜨거운 이슈다. 피해자나 당사자가 아니라 후원집단과 정치집단의 이해에 매몰되는 경우가 도마 위에 오른다. 대규모 국제 인권운동 단체인 국제앰네스티나 휴먼라이츠워치도 이런 엘리트주의의 경보음 속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피해자와 당사자의 목소리를 더 경청하고 조직의 투명성을 꾀하고 있다.

177석 거대 여당의 출현, 그리고 엘리트 시민단체가 정치권에 형성한 강력한 네트워크는 되려 시민단체가 본연의 역할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도덕적 우월감이 칼날이 된다. 진보의 가치가 서서히 잠식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정대협·정의연은 새롭게 탈바꿈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았다. 넓게 보면 대한민국 시민사회 전체에 던져진 화두다. 위기가 희망으로 바뀔지 지켜볼 일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