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화가이신 하나님의 걸작품

국민일보

우리는 화가이신 하나님의 걸작품

포항중앙침례교회 김혜은 집사 간증

입력 2020-06-0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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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은 집사(오른쪽)가 2018년 크리스마스 때 가족들과 함께했다.

저는 1980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포항중앙침례교회에 다녔습니다. 최초의 신앙적 고민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 찾아왔습니다. 자다 깰 정도로 죽음이 무섭고 구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설명으론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김중식 목사님께서 구원에 대해 자세히 설교해주셨습니다. 김 목사님은 ‘하나님을 위해 인생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세상 성공이 하나님께도 영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저에겐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99년 경찰대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시절 나름대로 하나님을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2003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경찰대 졸업생은 졸업과 함께 경위로 임관하는데, 당시 120명의 졸업생 중 여학생은 12명밖에 되지 않아 수도권에 발령해 줬습니다.

그런데 본청 인사과에서 우리 기수 여학생을 전국 각 청에 배분해 발령할 예정이니 어느 지역에 갈지 상의해서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여학생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여서 저도 포항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넓은 세상으로 뻗어가려는 야망에 하나님이 브레이크를 거시는 것 같아 그리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포항 발령과 함께 교회로 돌아왔지만, 저에게 교회와 목장은 잘 맞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있다가 2년 후 인사이동이 가능해지면 포항을 떠나리라 결심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주님께서 포항중앙침례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이해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잘 믿는 것에 성공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2년 뒤 본청에 있던 선배들로부터 경찰청에 들어와 일하자는 제안이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며 포항중앙침례교회를 믿음의 땅으로 선택했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기도하면서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 후로도 경찰청 혹은 지방청에서 발령 제안이 있었지만, 번번이 거절하고 교회에 남았습니다.

교회에 남기로 결단한 후 하나님께서는 공동체 속에서 저의 신앙과 인격을 다듬어 가셨습니다. 2009년 결혼했고 영적으로도 남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 자라서 청년 목자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사역을 통해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 권위에 대한 순종을 깊이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선 저를 통해 여성 청년들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제 작은 삶을 드렸을 뿐인데 주님은 작은 부분이나마 저를 사용하셨습니다.

2016년 5월 둘째 딸 출산과 함께 사역을 내려놓고 청년 시절 목자 밑으로 돌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더욱 깊이 들어가는 축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자 한 야심과 그릇되게 애썼던 제 마음을 돌아보며 다듬어지는 시간이 됐습니다.

젊은 시절 참 호기롭고 당당하며 하나님을 위해서도 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제는 시편 131편을 참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 시절 보아너게 같은 저 자신을 두고 하나님께 사랑의 사도 요한처럼 바꿔 달라고 드렸던 기도가 이제 조금씩 그 기미가 보이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최근 제 삶에 있어 교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교회는 믿지 않던 저를 부단히 말씀 앞에 세워 구원 얻게 도와주고, 제가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뤄 함께 웃고 울고 사랑하며 자라게 해줬습니다. 포항중앙침례교회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구원 얻고 자라도록 돕고 또 웃고 울고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주님과 함께했던 숱한 사건과 역사의 주인공이 저의 교회입니다.

저의 목자가 “혜은아 넌 하나님의 걸작품이야”라고 말했습니다. 화가이신 하나님과 캔버스인 우리들. 화가가 하나님이시기에 캔버스가 도망만 가지 않는다면 모든 캔버스는 걸작품이 될 것입니다.

캔버스에게 필요한 것은 자질이 아니라 화가가 있게 한 그 자리에 잘 서 있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 안에서 자라고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포항중앙침례교회라는 공동체에 잘 붙어 있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