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총명에 대하여

국민일보

[청사초롱] 총명에 대하여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입력 2020-06-03 04:02

한자에서 보듯이 귀가 밝은 것이 ‘총(聰)’이고 눈이 밝은 것이 ‘명(明)’이다. 눈과 귀가 밝아야 보고 듣는 견문(見聞)이 넓어지고 그래야 지혜롭게 된다. 여기서 ‘총명예지(聰明睿智)’라는 말이 나왔다. 총명예지는 군왕의 덕목이다. ‘중용(中庸)’에서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인만이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천하에 군림할 수 있다”고 했고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서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로워 그 천성을 다한 자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면 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창생의 군주와 스승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하게 한다”고 했다. 총명은 군주가 반드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이이(李珥)는 선조(宣祖) 임금을 위해 제왕학(帝王學)의 교재로 편찬한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군주의 총명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 세상은 지극히 넓고 해야 할 일이 지극히 많기 때문에 임금은 천하의 지혜를 모아서 천하의 일을 결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마다 제각기 지혜가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에게서도 한 가지는 얻을 것이 있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두 취하여 하나의 지혜로 합하고, 나의 기준이 정확하고 밝아서 중정(中正)을 얻는다면, 천하가 광대하다 하더라도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을 운용하는 것과 같고, 일의 기틀이 번다하다 하더라도 물병을 거꾸로 들어 물을 쏟듯 막힘이 없을 것이다. 대개 천하의 눈을 나의 눈으로 삼는다면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의 귀를 나의 귀로 삼는다면 들리지 않는 것이 없으며, 천하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삼는다면 생각하지 못할 지혜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성스러운 황제나 밝은 왕이 천하를 고무(鼓舞)하면서도 심력(心力)을 수고롭게 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다.”

임금이 천하 만인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삼는 것이 명(明)이고 천하 만인의 귀를 자신의 귀로 삼는 것이 총(聰)이다. 임금은 해야 할 일이 지극히 많고도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혼자서 처리할 수 없으므로 천하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렇게 한 사람은 순(舜) 임금처럼 태평성세를 열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자신만 못하다고 여겨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 사람은 걸(桀)이나 주(紂)와 같은 망국의 군주가 된다. 순 임금의 총명이 남만 못하지 않았겠지만 반드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점을 보면 이를 시원스럽게 따라서 남과 자신의 간격을 두지 않았고, 온 천하 사람의 좋은 의견을 모아서 스스로 시행했기에 순 임금이 성군이 될 수 있었다. 이이는 성군이 되는 방도가 이러하다고 했다.

이이는 다른 글에서도 “한 사람의 총명은 한계가 있고 천하의 도리는 끝이 없으므로, 성인은 스스로 그 총명을 믿지 않고 반드시 대중의 귀를 나의 귀로 삼고 반드시 대중의 눈을 나의 눈으로 삼은 다음에, 귀가 밝아 듣지 못하는 것이 없고 눈이 밝아 보지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지혜가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덕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사방의 눈으로 자신의 눈을 밝히고 사방의 귀로 자신의 귀를 통하게 한다는 뜻으로 ‘서경(書經)’에 나오는 ‘명사목(明四目)’과 ‘달사총(達四聰)’을 들고 선조 임금에게 온 나라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라고 권했다.

어느 시대나 지도자의 실패는 스스로 총명하다 하고 남들이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데서 비롯한다. “볼 때 천하의 눈을 나의 눈으로 삼는다면 그 눈은 보지 못할 것이 없고, 들을 때 천하의 귀를 내 귀로 삼는다면 그 귀는 듣지 못할 것이 없다.” 17세기 학자 이시선(李時善)이 이른 이 말을 거듭 새겨볼 때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