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23) 사는 동안 만났던 분들, 글에 담아 고마움 전하고 싶어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연수 (23) 사는 동안 만났던 분들, 글에 담아 고마움 전하고 싶어

수녀원 나온 뒤 절필 선언, 5년여 흐른 뒤 시·수필 조금씩 발표… 글 쓰기 힘든 여건에도 주님 인도하셔

입력 2020-06-0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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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사모가 펴낸 시집과 수필집들. 이 중 ‘사랑이 있어도 때로는 눈물겹다’는 종합 베스트셀러 6위까지 올랐다.

“김연수 학생은 시인이 돼야겠네.”

수녀원에서 3년의 수련을 마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 내가 쓴 시를 처음 본 오탁번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오 교수님의 농담 섞인 말은 후에 현실이 됐다. 대학 졸업 1년 만에 시단에 등단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박목월 교수님께 시론을 배울 때도 시만 썼지, 시인이 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화가가 될 생각은 해봤다.

첫 시집이 나오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수녀원에 있으면서 시를 쓰고 발표했지만, 남편을 만나 수녀원을 나온 뒤에는 절필을 선언했다.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다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속죄였다.

5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시와 수필 등을 조금씩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첫 시집 ‘숨어 사는 신화’가 나왔다. 다행히 첫 시집부터 인세를 받고 출판할 수 있었다. 등단만 했지 무명이었던 내게는 큰 감사거리였다. 두 번째 시집 ‘아득한 별에 꽃씨 묻으며’는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근무할 때 나왔다. 남편과 함께 쓴 실천신학서 ‘영성수련의 이론과 실제’도 그 무렵 썼다.

자전적 에세이 ‘사랑이 있어도 때로는 눈물겹다’는 남편이 쓴 ‘밥퍼’가 유명해지면서 독자들의 빗발치는 성화에 못 이겨 쓴 책이다. 쉰도 안 돼 자전적 얘기를 쓴다는 게 민망해 출판사의 요청에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거절했었다.

사실 글을 쓰기 힘든 여건이기도 했다. 원고를 쓰다가 책상 위에 놓고 나오면 젖먹이 막내가 흐트러뜨리는 바람에 이어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내게 출판사 직원은 “이 기회에 집필실을 하나 마련하세요”라며 부추겼다. ‘집필실’ 말만 들어도 마음이 시원했다. “하나님 서재 한 칸만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책을 썼다.

1997년 여름, 책이 서점에 나오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2달 만에 종합베스트 6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해 닥쳐온 외환위기의 거센 물결은 우리나라 출판시장을 경직시켰고 책 판매량도 급감했다. 나중에 인세를 받았는데 딱 서재가 있는 전세집으로 옮길 만큼이었다. 서재 한 칸 대신 문학관 한 채를 달라고 기도할 것을…. 하나님은 기도대로 이뤄주시는 분이다.

그 뒤에도 많은 시와 산문을 썼고,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지만 정말 쓰고 싶은 글은 이제부터인 것 같다. 퇴직하고서 쓰겠다고 미뤘던 책들이 몇 권 있다. 우선 시편기도집을 완성하고 싶다. 크리스챤아카데미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기본 구성을 다 짜놓은 책인데 시편을 공부한 다음에 쓰려고 여태껏 미뤄왔다. ‘영성수련의 이론과 실제’ 개정판도 쓰고 싶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멋지고 아름다운 분들의 이야기도 남기고 싶다. 그분들이 내 삶에 남긴 향기를 글에 담아 전하고 싶다.

이제 보니 나는 욕심꾸러기임에 틀림없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무엇보다도 묵안리와 설곡산 다일공동체 마당과 주변을 아름답고 유용한 꽃밭으로 만들고 싶다. 공동체 시작부터 해오던 일이지만, 3년 전부터는 먹는 꽃들을 길러 꽃차와 꽃식초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공동체 가족들도 기쁘게 함께하니 감사하다. 대학시절 시험공부를 하다 쉬는 시간 틈틈이 읽었던 원예와 조경 서적들이 이렇게 쓰이니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