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언택트 경제에 가려진 콘택트 노동

국민일보

[여의도포럼] 언택트 경제에 가려진 콘택트 노동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20-06-04 04:02

잠시 진정되는 듯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가 다시 심각해졌다. 쿠팡의 집단감염 때문에 100명이 넘는 추가 확진자가 발생한 데 이어 수도권 종교모임과 학원 등을 통한 전염이 계속되고 있다. 대규모 감염 사태는 막았지만 여전히 불씨가 남아 마음 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쿠팡의 집단감염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배신감을 감추지 못한다. 빠르고 저렴한 배송으로 온라인·모바일 쇼핑 선두주자로 자리잡은 쿠팡이 소비자 안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배신감과 안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쿠팡에서 탈퇴하려는 소비자들이 급증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그런데 시선을 돌려보면 배신당한 것은 쿠팡 소비자만이 아니다. 쿠팡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 역시 배신을 당한 셈이다. 노동자들의 일터에서의 안전이 기업 측 무관심과 무성의 때문에 무너졌다. 쿠팡 노동자들은 어쩌면 소비자들이 처한 위험보다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됐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들은 소비자들과 달리 대안이 별로 없는 처지다. 쿠팡 사태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맞아 드러난 플랫폼 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언택트 온디맨드 경제의 급성장 계기가 마련됐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고, 정부 역시 한국판 뉴딜의 핵심으로 비대면 중심 언택트 경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한다. 하지만 인공지능(AI)과 드론, 자율주행차, 로봇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는 한 언택트는 경제의 앞면인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의 거래에만 해당된다. 거래가 완결되려면 그 뒷면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신속한 상품 배송이라는 콘택트 노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언택트 경제의 앞면을 지탱해주는 플랫폼 콘택트 노동은 최근 들어 빠르게 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이 워낙 빠르게 늘다 보니 바뀐 현실에 맞게 제도와 법을 갖출 틈이 없었다.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온라인 혹은 모바일로 거래가 형성되면서 발생한 수요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플랫폼 노동은 온디맨드로 이뤄진다. 출퇴근하면서 기업의 감독과 통제 아래에서 일해온 과거 노동자들과 판이하게 다르고 오히려 독립 계약자와 유사하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응당 누려야 고용보험, 연금, 건강보험 등 많은 보호와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 노동의 상황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해외 선례와 최근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정책과 제도를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절실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해 우버와 같은 플랫폼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어셈블리 빌5 법안을 통과시켜 올해 첫날부터 발효되도록 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에서 배송이나 운전을 하는 이들은 독립 계약자가 아닌 피고용자로서 각종 보호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2017년 우버 운전기사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올해 초 최상급 법원에서 우버 운전기사들의 지위가 회사에 고용돼 종속적으로 일하는 지위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러한 해외 입법 사례와 판례는 한국의 플랫폼 노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는 플랫폼 노동 전반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는 집회가 있었다. 집회의 주최 측과 참여자들은 플랫폼 노동에 해당되는 배달라이더와 드라이버가 노동청에서 근로자 판정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부당한 대우와 지휘감독이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로 분류된 사람들 가운데 독립적으로 일하지 않고 일의 시간과 장소, 작업 내용에 관련된 지시와 통제를 받는 실질적 노동자 비율이 53.5%에 달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따른 경제적 위기 극복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삼은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정부는 이미 기업들에 긴급 지원을 약속하는 대신 일자리 유지를 부탁했다. 하지만 정부의 일자리 유지와 창출에 대한 다짐은 여전히 언택트 이전 과거의 고용과 노동에 대한 관점에 기반해 있다. 한국판 뉴딜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언택트 경제를 가로막는 규제 개혁과 함께 변화된 노동 현실과 조건을 반영한 플랫폼 노동에 대한 포괄적 보호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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