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코로나 이후 공연예술의 운명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코로나 이후 공연예술의 운명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입력 2020-06-04 04:04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는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린다. 홈그라운드인 링컨센터 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매 시즌 예산 3억 달러(약 3600억원)를 투입해 25개 안팎의 작품을 250회 정도 공연한다. MET는 지난 3월 1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5월 9일까지 예정된 2019-2020시즌 공연을 중단했다. 이와 함께 기획 직원 일부를 제외하고 500명에 달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단원 및 무대 스태프를 일시 해고했다.

약 두 달 반이 지난 뒤인 6월 1일 MET는 2020-2021시즌 전반부 공연을 취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미 피터 겔브 총감독이 올해 공연은 어렵다고 5월 초 밝힌 바 있어서 새롭지는 않다. MET는 발표에서 매년 해오던 연말 갈라 콘서트와 함께 공연이 재개되기를 희망했지만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게다가 MET가 공연을 재개하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에 따라 공연을 올릴수록 적자가 더 쌓이게 된다. 객석이 약 3800석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 1.5m 거리두기를 도입하면 400~500석만 활용할 수 있다. 공연 중단 이후 지금까지 1억 달러(약 1218억원)의 손실을 기록 중인 MET에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환경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공연 재개는 해답이 되지 못한다. 유럽의 공연장과 예술단체가 국가 등 공공 지원에 크게 기대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민간단체 및 개인의 후원과 티켓 판매에 의존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겔브 총감독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랜드 오페라는 함께 가기 어렵다. 코로나19로 MET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생존이 위협받는 것은 MET만이 아니다. 미국 내 대부분의 공연장과 예술단체가 기로에 놓였고, 많은 예술가들이 해고됐다.

지난달 보스턴 심포니 홀은 공연장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할 경우 1486석 가운데 20%인 291석만 팔 수 있다면서 코로나19 이전의 수입을 얻으려면 티켓 값을 적어도 4~5배는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극소수의 부유층 관객 또는 후원자를 위한 공연을 할 수밖에 없는 만큼 공연을 올리는 것이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셈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보스턴의 또 다른 콘서트홀인 조던 홀은 아예 2020-2021 시즌을 통째로 닫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좀더 길어질 경우 공연예술은 궤멸 위기에 놓이게 된다. 공공 지원이 적은 미국에서 이미 시작됐으며 유럽 역시 불안한 징조를 보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BBC 소속 오케스트라들을 통폐합하라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방역이 성공적이어서 공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큰 폭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특히 공공극장을 대관한 민간 단체들은 거리두기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건 당국의 방역 강화 조치로 갑자기 공연장 문이 닫히는 상황이 발생하자 아예 공연을 포기하고 있다.

공연예술은 기본적으로 무대 위 퍼포머를 통해 공연되는 동안만 존재하는 일회적인 예술이다. 시공간의 제약이라는 특성 때문에 다른 장르의 예술보다 아날로그적 성격이 강하다. 또한 노동집약적 수공업이라도 규격화 및 대량생산이 가능한 영화와 달리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예술이라는 비판을 누르기 위해 대중화에 노력해 왔다.

코로나19 사태에 많은 분야가 타격을 입었지만 공연예술은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하다. 미래는 ‘언택트’(비대면)와 ‘언맨드’(무인화)의 시대라는데, 그 반대가 정체성인 공연예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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