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먼 곳을 바라보는 일

국민일보

[세상만사] 먼 곳을 바라보는 일

박지훈 문화스포츠레저부 차장

입력 2020-06-05 04:03

왜 책을 다루는 기사가 있어야 하나. 비좁은 신문 지면을 헐어 ‘금주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를 넣는 건 어떤 의미를 띨까. 당장 관심이 가는 이슈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서평 기사를 쓰며 밥벌이를 하는 것은 얼마나 한가한 삶인가. 정부 조사를 보면 1년간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성인이 2명 중 1명꼴인데, 이런 상황에서 ‘책 기사’가 무슨 쓸모가 있나. ‘좋은 기사=높은 조회수’라는 등식이 상식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서평 기사는 네티즌한테도 찬밥 취급을 당하지 않던가….

매주 신간 소개 기사를 쓸 때면 가슴에서 덜컹거리는 질문들이다. 일껏 써낸 기사가 무대 위 방백처럼 어떤 반응도 얻지 못할 땐 더 많이 자문하게 된다. ‘왜 서평 기사를 써야 할까’라고. 싸구려 가발같이 궁색한 대답이 되겠지만,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선 서평 기사의 필요성은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책 기사의 필요성을 방증할 테니까 말이다. 한데 아무리 고민해도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세상엔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데도 통찰력 넘치는 말과 글을 쏟아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웬만한 궁금증은 가없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독서의 필요성을 설명해야 한다면,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책이 선사하는 기쁨에 관한 것이다. 풍성한 삶의 뒷배가 돼주는 건 호기심일 때가 많다. 책은 ‘질문이 있는 삶’을 살게 해준다. 좋은 책은 항상 기다란 꼬리 같은 질문을 남기곤 한다. 책에는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질문 속에 질문이, 그 안에 또 다른 질문이 담겨 있곤 한다. 최근 소설가 김중혁을 인터뷰한 글을 읽다가 이런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책은 삶을 바꾸지 않지만, 대신 뭔가를 살짝 바꾼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큰 게 바뀌는 게 아니고. 한 권 읽고 나면 마음의 위치가 0.5㎝ 정도 살짝 옮겨지는 것 같다.” 그의 말마따나 “마음의 위치가 0.5㎝ 정도” 옮겨지도록 하는 게 책의 힘이라면, 이유는 책에 배태된 질문 덕분일 거다. 판에 박힌 이야기이지만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

독서가 왜 중요한지에 답할 수 있는 힌트는 최근 나온 신간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레이업슛을 잘하는 방법이나 신발 끈 묶는 법을 알려면 책보다는 유튜브를 보는 게 낫다. 하지만 “추상적 개념을 매개로 하는 사유”는 다르다. 가령 ‘정의’ ‘사랑’ ‘자유’ 같은 것들은 영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이들 개념의 가치를 알려면 책 같은 문자 매체에 의지해야 한다. 언어학자 김성우는 ‘유튜브는…’에서 “문자 매체는 시각 매체에 비해 추상적인 개념들을 아주 잘 다룬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관계’라는 어휘를 글로 쓰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관계가 그 안에 딱 들어가는 거예요. 이런 관계, 저런 관계가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런데 영상은 그게 아니죠. 영상은 이미지라는 매체로 세계랑 딱 붙어 있기 때문에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지식의 표정’이라는 인터뷰집에 실린 대만 지식인 탕누어 인터뷰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탕누어는 책을 읽는다는 건 보지도, 생각하지도, 갖고 있지도 않은 무언가를 향하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책을 읽으면 “필연적인 곤혹”을 마주하게 되고, “훌륭한 독자는 그런 곤혹이 찾아오는 것을 좋아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기본적으로 독서는 먼 곳을 향합니다.” 즉, 독서는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춰 서서 먼 곳을 바라보게 해준다. 어쩌면 이 역시 신문에 책 기사가 실려야 할 이유일 것이다.

박지훈 문화스포츠레저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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