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무료 공간… 노량진 ‘라브리’서 미래 설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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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생 무료 공간… 노량진 ‘라브리’서 미래 설계를

기독NGO 사랑광주리 운영 ‘청년센터 라브리’를 가다

입력 2020-06-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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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광주리가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 세운 ‘청년센터 라브리’의 간판과 실내 전경. 오정현 사랑광주리 이사장은 지난달 23일 개소식에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지나는 청년들이 피난처와 같은 이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쉼과 힘을 얻고 건설적인 장래를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설교했다(위부터).

서울 동작구 만양로. 노량진 컵밥거리 부근인 이곳은 공무원 시험 학원이 밀집해 있어 하루에도 수만 명의 수험생이 오간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사랑광주리(이사장 오정현 목사)는 이곳 5층 건물의 2층 330㎡(100평) 공간에 공시생들을 위한 자습과 정서회복 공간을 만들었다. 이름은 ‘청년센터 라브리’. 자습실 150석과 2개의 상담공간이 있는데 모두 무료다. 라브리는 1955년 프란시스 쉐퍼가 만든 복음주의 기독교 공동체 이름으로 불어로는 피난처를 뜻한다.

사랑광주리 이사로 한국산업은행 총재를 지낸 김창록 장로는 4일 “노량진 고시촌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 취업준비생 등 12만~15만명이 모이는 지역”이라며 “취업 절벽과 사회적 기회 불균등이라는 가슴 아픈 사회현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김 장로는 “과거 재정경제부에 근무하면서 1990년대 시작된 일본의 장기불황, 경기침체 상황을 봤다”면서 “일자리가 없어 활기를 잃은 일본 청년들이 집에 갇혀 있다 보니 사회 역동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보면서 대한민국 청년들도 비슷한 길을 갈까 우려했는데 결국 현실이 됐다”면서 “노량진에서 미래를 준비하다 정서불안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지난 1월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청년센터 라브리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은 원래 PC방이었다. 어두침침한 공간이었지만, 대형 유리창 5개를 내고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카페 분위기로 바꿨다. 자리는 1인석, 4인석, 6인석 등 다양하다. 와이파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좌석마다 전기콘센트를 설치했다. 벽에는 청년작가의 산뜻한 그림이 걸려 있다. 잔잔한 복음성가를 틀어놓아 공부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시설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임중혁(29)씨는 “길을 가다가 무료 공부 공간이 있다는 현수막을 보고 들어왔다”면서 “평소 학원수업 이후 자습공간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독서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생각보다 이곳 자습 환경이 좋아 부담 없이 매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아는데, 비기독교인 입장에서 이렇게 좋은 시설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보건직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혜리(29·여)씨도 “독서실을 이용하려면 매달 20만원을 내거나 학원 자습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기독교 기관에서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부정적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노량진 공시생들의 미래를 생각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렇게 좋은 공간을 마련해준 것 같아 감사하다”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겐 이런 공간이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청년센터 라브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최근 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다 보니 1일 이용자를 100~150명으로 제한한다. 마스크 착용과 발열 체크 후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야 이용할 수 있다. 평일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주일은 쉰다.

유가을 사랑광주리 사무국장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하루 한 끼만 먹으며 공부하는 청년들이 많다. ‘배고픈데 밥은 주지 않냐’고 하는 청년들도 있을 정도”라며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10년을 공부해도 합격자는 2~3%밖에 안 되니 불안감이 얼마나 크겠냐”고 했다.

시설 관리자인 최현민(62) 사랑의교회 안수집사는 “경쟁이 치열한 시험을 앞두고 공부에만 매달리는 청년들을 보면 애처롭다”면서 “이곳에 와서 공부도 하고 쉬기도 하고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이어 “가끔 고맙다며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이들도 있다. 그때마다 ‘그러지 말고 그 돈으로 너희들 먹고 싶은 것 사 먹어라’며 돌려보낸다”면서 “여기서 공부한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도 이곳에서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이웃을 돕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청년센터 라브리는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면 주 1회 무료급식도 할 계획이다. 급식에 필요한 식재료는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해 주변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취업특강과 토요음악회, 청년작가 전시회 등도 계획 중이다.

이기원 상임이사는 “사랑의교회와 사랑광주리는 다음세대 양육과 신앙계승에 사역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청년센터 라브리를 다른 곳에도 세워 청년들을 돌보는 울타리 역할을 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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