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본소득 실험이 필요하다

국민일보

[시론] 기본소득 실험이 필요하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입력 2020-06-09 04:02

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 도입 입장을 며칠 전에 내놓음으로써 주로 학계에서 논의되던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이제 실행과 관련해 정치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의 보장을 위해 모든 국민(보편성 원칙) 개개인(개별성 원칙)에게 자산, 소득, 노동 유무와 관련 없이(무조건성 원칙) 일정 금액(화폐지급성 원칙)을 정기적으로(정기성 원칙)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배경에는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기존 사회보장의 불충분성과 빈곤·불평등의 심화가 있다. 1970년대 이후 과학기술 변화와 세계화, 그리고 최근 4차 산업혁명 등장이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실업 증대와 불안정한 일자리 확산으로 인한 노동시장 불안을 드러냄으로써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제도의 대안으로 떠오른다. 더구나 코로나19의 팬데믹 현상은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선진국, 개발도상국 관계없이 각국 사람들 모두가 생생히 체험케 함으로써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이게 됐다.

기본소득의 대표적인 해외 사례를 보면, 우선 2016년 스위스의 무조건적 기본소득 안을 들 수 있다.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매월 약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막대한 재원 마련에 대한 우려로 인해 찬성 23%, 반대 77%로 부결됐다. 그럼에도 스위스의 기본소득 안은 불안정한 고용시장 변동 감소, 경제적 안정 유지, 사람들의 기본욕구 충족, 남녀 평등지원 등의 차원에서 사회보장제도의 보완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세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핀란드의 부분기본소득 실험(2017∼2018),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주 실험(2016∼2017), 캐나다 온타리오주 실험(2017∼2018) 사례들은 사회보장제도의 부실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해소하려는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기본소득 수준을 보면 모두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2016년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서울시 청년수당 등 청년정책이 정책화되면서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됐고, 2017년 19대 대선 후보자 중 일부 후보자들이 기본소득을 정치적 의제로 삼기 시작하면서 확산됐다. 그러나 청년배당과 청년수당은 엄밀히 따지면 개인의 자유 실현을 위한 현금지급성과 한시적 지급으로 인한 정기성 원칙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처럼 기본소득 이슈는 매우 다양하다. 기본소득 자체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으며, 설령 찬성하더라도 이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다.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적정한 수준 문제, 노동과 관련된 쟁점, 소비수요 창출 및 불평등과 재분배에 대한 효과성 문제, 재원 마련 적절성 등의 쟁점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기본소득은 행정효율성, 자유가치 실현, 노동 인센티브, 빈곤과 불평등 완화라는 차원에서 도입의 당위성은 분명히 드러나지만 실제 도입과 관련해 심각한 재정 문제가 대두된다.

그래서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현실적인 도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낮은 수준의 부분기본소득 도입을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소득 비판론자들은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은 기본소득도 아니며 사회보호장치로서 정책 효과가 약하고, 오히려 사회보장 시스템의 결여된 부분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각종 수당 및 공공부조 제도를 결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포스트 코로나라는 미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대전환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국민의 행복한 삶을 제대로 보장하는 복지정책의 새로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 물꼬를 터 학계와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해 열띤 사회논쟁을 벌여 합의를 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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