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음 받은 대로, 다름 인정하고 간격 줄여야

국민일보

하나님의 지음 받은 대로, 다름 인정하고 간격 줄여야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8> 기질

입력 2020-06-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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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가 2018년 12월 안양교도소에서 열린 성탄 축하예배에서 성경적 형상회복의 중요성을 설교하고 있다.

산에 사는 여우와 들에 사는 두루미가 서로 사랑하게 됐다. 여우는 두루미의 우아한 걸음과 몸짓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두루미는 여우의 지혜로운 처세술과 많은 경험, 스펙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둘은 만나기만 하면 감정이 상해서 돌아왔다. 여우의 사랑법은 ‘나만 바라봐’ 하며 두루미를 통제하고 제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루미의 사랑법은 ‘나처럼 해 봐’ 하며 잔소리로 표현됐다.

어느 날 여우는 화해하기 위해 두루미를 집으로 초청했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한 여우는 두루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고급스러운 접시에 수프를 담아 대접했다. 그러나 긴 부리의 두루미는 접시에 담긴 수프를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두루미도 얼마 후 여우를 초청했다. 여우가 좋아하는 맛있는 고기를 호리병에 담아 예쁘게 대접했다. 여우는 시장했지만, 부리가 없어 호리병에 담긴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여우와 두루미는 어떻게 됐을까. 여우는 두루미를 만날 때 접시를 가지고 가고, 두루미는 여우를 만날 때 호리병을 가지고 갔다. 산에 살던 여우와 들에 살던 두루미는 모든 것이 다르지만, 바꾸려 하지 않고 인정함으로써 그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

각색한 이솝우화 속엔 하나님의 뜻과 메시지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아름다운 덕목이며, 높은 인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어떤 상황이나 불편한 대우에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서운해하는 것은 대접받고자 하는 높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삶의 방식이 옳다는 자기 의(義)다.

배려는 상대를 내 스타일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상대방의 모습 그대로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서로의 단점이 장점으로 보완돼 하나 되는 것, 이것이 창조의 목적에 부합한 진정한 배려이며 연합이고 사랑이다.

신앙은 영의 일이다. 진정한 나의 모습은 사회적 위치나 소유의 정도, 재능의 유무가 아니라 영의 상태라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목적과 뜻을 갖고 우리를 지으셨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각자 독특한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

독특한 개인의 성질인 기질은 부모의 유전자의 특성을 통해 잉태 시에 조합되고 결정돼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기질마다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이 있으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기질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물이나 일에 반응하는 모습도 다르고 표현방법도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질을 사용해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신다. 각자의 기질과 사고방식이 다르며 틀린 것이 아님을 깨달아 상대방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연합을 이뤄야 한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개인이 연합해 교회로 세워지기를 바라신다.

개나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노란 꽃으로 지음을 받아 노란 꽃을 피운다. 진달래는 분홍 꽃으로 지음을 받아 분홍 꽃을 피운다. 우리도 하나님께 지음 받은 대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차이와 간격을 줄여 가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기질을 사용하시되 아름다운 연합을 위해 훈련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다. 그래서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자를 ‘잘못된 자아 파쇄’ 파트너로 세팅하신다.

단적인 예로 마리아와 마르다의 유형을 들 수 있다. 마리아의 유형은 조용하고 정적이며 내성적인 성향이고, 마르다의 유형은 활동적이고 동적이며 외향적이다. 마리아의 유형은 사람 중심이고 마르다의 유형은 일 중심이다. 마리아의 유형은 관계 중심이며 순종적이다. 반면 마르다의 유형은 성과 중심이며 주도적이다. 마리아의 유형은 선지자적인 기름 부음이 강한 유형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다. 반면 마르다의 유형은 사도적인 기름 부음이 강하며 지도자형이다.

두 성향은 도무지 같은 부분이 없다. 부딪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서로 부딪침으로 아름답게 다듬어 가신다. 부딪침의 정도가 사랑의 정도다. 그래서 영적 대가들은 고난과 환난을 자원으로 여겨 기쁨으로 받는다. 당신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파트너, 삶의 ‘가시’는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신부로 세우기 위해 허락하신 선물이다.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의 파트너를 집중하시고 추적하신다. 그리고 서로의 관계를 조율하신다.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서로를 다듬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말고 감사와 기쁨으로 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만남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듯 서로를 알아 가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빚으시는 주님의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내 교통사고 보험금 챙긴 아버지,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

정광재 목사(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1985년 부산 사하구 장림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벧엘고아원 어린이들과 함께했다.

칠천각 중국집에서 일하던 어느 날, 사장이 심부름을 시켰다. 아파트 동호수를 잘못 알고 배달 간 형을 찾아 제대로 음식을 갖다 주라고 했다. 10살 나이의 나는 부자들이 살던 부산 동대신동 삼익아파트 쪽으로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규정 속도를 지키지 않고 달리던 택시에 치이고 말았다. 내 몸은 공중에 떠서 그대로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쳐졌다. 하마터면 철제 건물 모서리에 머리가 찍혀 죽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앞니 2개가 망가지고 잇몸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빨리 형을 찾아 제대로 배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뛰기 시작했다. 피가 나오는 입을 손으로 막고 무사히 배달을 마친 후, 나는 다친 것보다 사장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 삼익아파트 옥상에 숨어 쭈그려 앉아 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저녁이 돼서야 홍익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날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다. 하지만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간호사가 라면을 끓여줬다. 이가 아파 잘 씹지도 못했지만, 그때 먹은 라면 맛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다행히 택시 기사는 도망을 치지 않았다. 자동차보험 혜택을 받아 이빨을 평생 4번 치료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보험금을 일시불로 탔다. 큰어머니에게 10만원을 주고 나머지는 당신의 주머니에 챙겼다. 그리고 나를 다시 큰어머니가 일하던 부산 벧엘고아원으로 보냈다.

8살에 나를 고아원에 보냈던 아버지, 형제복지원에서 꺼내어 중국집에 넣었던 아버지, 아픈 아들보다 보험금에 관심이 있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지금도 생존해 계신다. 그런 아버지가 밉고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나고 난 뒤, 형상 회복의 은혜로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용서는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온전히 주님의 은혜였다.

용서는 우리의 권한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다 용서받은 죄인이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 받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내가 주님의 사랑으로 회복될 때 주어지는 주님의 은혜다.

그렇게 고아원에 다시 들어간 나는 공부 못하는 말썽꾸러기로 살았다. 통지표를 받으면 ‘양’ ‘가’로 도배를 해서 놀림도 받았다. 고무줄놀이하는 아이들의 고무줄을 끊어 가난한 아이들에게 갖다 주기도 하고 비 오는 날 두꺼비를 잡아 아이들 우비에 넣는 장난도 쳤다. 아이들을 때려 교무실 앞에서 걸상을 들고 벌을 선 적도 있다.

지나가던 선생님이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고 했다. 그래도 자존심이 세서 당당하게 “대통령이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도 어처구니없었을 것이다.

죽을 고비도 많았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적도 있다. 아이들과 산에서 놀다가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나뭇가지에 외투가 걸려 간신히 매달려 있다가 가까스로 구출되기도 했다. 한겨울 현이라는 친구와 고아원 밑 저수지에서 썰매를 타다 얼음이 갈라져 물에 빠진 적도 있다. 몸이 얼음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 멀리 언덕에 있던 집에서 나온 한 아저씨가 뛰어와 긴 막대로 구해줬다. 그 아저씨가 인공호흡을 해서 기절한 내가 살아날 수 있었다.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가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살리는 목사가 돼 하나님의 귀한 사역에 쓰임 받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어렸을 적 공부를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가 됐다. 말썽꾸러기였던 어린아이가 변해 영적, 육적으로 어렵고 힘든 자들을 회복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죽을 고비에서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영적인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지난날 힘들고 한 맺힌 사연도 주님 앞에서 재해석 받으면 많은 영혼을 살리는 영적 자원이 된다.

정광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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