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 품은 주님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사마리아 여인 품은 주님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9> 하나님의 러브스토리

입력 2020-06-17 00:08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가 지난해 9월 경기도 양주 송추 스포지움에서 다메섹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앙은 사랑 이야기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로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피와 땀을 다 쏟아 값을 치르고 사랑의 길을 다시 여셨다.

그에 반해 인간의 사랑은 사단에 의해 변질했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사랑을 성경뿐 아니라 자연 만물을 통해 나타내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전하시지만, 사랑에 미개한 우리는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꾸 엉뚱한 반응을 한다.

하나님 믿는 일에 특심했던 사울은 예수 믿는 자를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하나님을 잘 믿고 가르친다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우리의 그릇된 지식과 열심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든다.

주님의 십자가 지심을 만류하는 베드로와 자리다툼 하는 제자들처럼 우리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수많은 군중 중 한 사람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우리는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을 한다. 실상은 자기 유익을 위한 거래다. 목숨처럼 사랑하는 배우자나 부모, 자녀에게 쏟는 사랑의 뿌리도 깊이 파고들면 자기만족, 자기애의 조건적 사랑이다.

그래서 자신의 기대에 조금만 미치지 못해도 ‘내가 어떻게 했는데’ 하며 서운한 속내를 드러낸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 사랑의 방법은 하나님께 똑같이 적용한다. “이렇게 해 주시면 저도 이렇게 할게요”라며 조건을 달며 거래를 하려고 한다.

사랑은 상대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상대에 대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아는 것이다. 많이 안다는 뜻은 친밀함의 정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눈빛만으로도 아는 아주 친밀한 관계까지 깊어지길 바라신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길 바라지만 물질세계에서 죄로 물든 우리는 자꾸 하나님의 손만을 구한다. 더 큰 가치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면 사실 다 가진 것이다. 아빠 손에 들린 사탕에 마음이 뺏긴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이는 아버지에겐 관심이 없고 달콤한 사탕에 온 마음이 집중된다.

이제 우리는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뜻을 이루는 영적 통로, 아름다운 신부가 돼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과 뜻과 목숨, 지·정·의를 다해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 감정만이 아닌 목숨까지 다한 사랑의 본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참사랑은 대상에 대한 희생이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 즉 베푸는 사랑이다.

가정에서도 참사랑의 능력은 변화를 가져온다. 많은 영적 체험과 은사를 맛보고 다양한 지식을 기반으로 가정에서 바른말과 옳은 소리를 하지만 변화는 없다. 아름다운 언어로 설득해도, 아무리 기도해도 가족들의 변화는 없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내 문제다. 내가 혼의 사랑으로 행하고 있어서다. 머리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의 사랑은 자기만족이며 능력이 없다. 당신이 쏟아 놓은 언어, 위로의 말들은 누구의 만족을 위해서인가.

자녀를 향한 바램, 배우자에게 쏟아지는 불평과 불만, 칭찬은 자기만족과 기쁨을 위한 것은 아닌가. 이것은 혼의 사랑에 불과하다. 겉으론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국은 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참사랑은 영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생명이 있어 능력으로 나타난다.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시킨다. 그 사랑은 가슴으로 사는 삶을 뜻한다. 영의 사랑은 시선이 상대에게 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상대를 사랑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며 희생적인 사랑이다. 사랑은 콩닥거리는 가슴의 일만이 아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온몸과 마음을 던져 수고하는 희생이 동반돼야 한다. 자신을 희생 제물로 주신 주님처럼 말이다.

사랑은 참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사람의 상황과 형편을 헤아려 메마른 가슴을 따스한 온기로 데워 준다. 사마리아 여인을 품으신 주님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 나에게 누명을 씌우고 아픔을 주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믿어 줘야 한다. 수 없는 실수로 넘어지는 우리를 끝까지 믿어 주신 주님처럼 말이다.

사랑은 가망 없어 보이고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상태에서도 그 안에 실오라기 같은 소망을 보고 포기하지 않는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처럼 말이다. 사랑은 견디는 것이다. 마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주님처럼 분하고 서운한 일을 겪어도, 돕는 얼굴에 침을 뱉고 수고한 등에 매질을 당해도 말이다.

사랑은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지목해주신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죄인인 나를 지목해 사랑해주신 주님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하라고 붙여주신 그 사람은 누구인가.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9살 때 서울로 가출… 모르는 사람들에게 끌려가 날품팔이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기 전 서울에서 날품팔이 생활을 한 적이 있다. 9살이던 1980년 여름 부산 벧엘고아원에서 가출한 나는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고아원에서 입은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기에 역무원에게 걸릴까봐 쿵쾅대는 마음으로 같은 식구로 보이도록 모르는 아주머니 옆에 바짝 붙어 통과했다.

처음 본 서울역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잠시, 험악한 얼굴의 형들에게 붙잡혀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다. 분명 서울은 눈 뜨고 있는데 코 베어 간다는 말이 맞는 곳이었다. 그 형들은 5명이 하나돼 움직였다. 도착한 곳에 나만 끌려온 게 아니었다. 15세 이상에서 성인까지 있었다. 여러명의 누나 잡혀 와 있었다. 다들 촌에서 무작정 상경한 모습이었다.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형들의 폭행과 윽박지름이 무서웠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어린 나이에 위험을 직감한 나는 옆의 누나에게 눈짓과 속삭임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이대로 있으면 인신매매로 팔려 가게 되니 도망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기회를 틈타 누나들과 함께 도망가기 시작했다. 젖먹던 힘을 다해 뛰어 건널목 너머 불빛이 보이는 초소로 도망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경비 아저씨는 그런 나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외면했다. 나는 다시 형들에게 잡혀 와 심한 폭행을 당했다. 불행 중 다행은 10명의 누나 중 5명은 탈출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날 밤 형들은 나에게 소개비를 받고 중국집에 팔아넘긴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두 달만 일하다 도망가면 소개비를 물어 주지 않아도 되니 참으라”는 팁까지 줬다. 날이 밝자 지긋지긋한 중국집 철가방 짐꾼이 됐다. 하지만 며칠 있지 않아 그 중국집에서 도망을 쳤다.

중국집을 나와 얼마큼 갔을까.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을 서성이는데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건넸다. “얘야, 일을 해 보지 않겠니? 숙소도 제공해줄게.” 그 말에 무작정 그 아저씨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반포의 한 허름한 아파트였는데 여러 명이 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10층에 있는 송죽회라는 회사 사장이었다. 아파트는 회사 직원들이 모여 사는 숙소였다. 당시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은 완공됐지만, 호남선은 완공되지 않던 때다. 송죽회는 가판대에서 잡지와 신문을 파는 회사였다. 고속버스터미널 층층마다 50m 거리를 두고 가판대를 운영했다.

나는 나이가 어려 월급 받는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지 못했다. 나는 터미널에서 새 잡지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접근해 헌 잡지와 바꾸는 일을 했다.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면 선데이 서울, 레이디 경향,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과 같은 간행물을 들고 내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 “책 바꿔 보실래요?”하며 마치 새 책 권하듯 종류가 다른 옛 책을 선심 쓰듯 줬다. 그렇게 신간을 받아 사무실에 갖다 주는 일을 했다. 책 한 권당 70원을 줬는데, 50권이면 3500원을 벌 수 있었다.

가판대에서 일하던 직원 중엔 어린 나에게 선심을 베풀던 형도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형은 신혼집에 데려가 따뜻한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반찬은 소박했지만, 아랫목에 넣어둔 고봉밥을 덜어 줬다.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 주는 형을 보며 가족의 정을 느꼈다.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구두를 닦던 형도 인상적이었다. 몇 년을 주경야독해 서울대에 입학한 형을 보며 마음에 소망이 생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주님께서는 그때도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눈동자같이 지키셨다. 시련의 연단을 통해 그분의 커리큘럼 안에서 다듬어 가시고 계셨다.

정광재 목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