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일사천리 강경 조치에 악화하는 대북 정서

국민일보

[김의구 칼럼] 일사천리 강경 조치에 악화하는 대북 정서

입력 2020-06-17 04:01

걸핏하면 자행되는 일방적인 긴장고조에 염증 고개 들어
발가벗고 북에 동조하라는 건 비외교적이고 무례한 태도
북한은 이중적 존재… 공허한 일방적 인내 기조 재점검해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은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냈다. 10월 4일 폐막식에는 황병서 노동당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김양건 비서가 참석했다. 현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통일부 장관 등이 이들과 고위급 회담을 열고 10월 말 2차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불과 6일 뒤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했다. 고위급 회담은 무산됐고, 북한 실세 3인방의 ‘깜짝 방남’으로 순풍을 탈 듯했던 남북 관계는 다시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북한의 급작스러운 남북 관계 뒤틀기를 보면 6년 전이 떠오른다. 국제 스포츠 행사 참가를 통해 대화 물꼬가 트였지만 대북전단을 빌미로 관계가 경색됐다.

하지만 북한의 속내는 전단 문제에 대한 불만이 아닌 게 틀림없다. 우리 정부가 이를 막으려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으론 규제가 어렵다며 입법 조치를 해야 한다던 정부가 현행법을 적용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남북교류협력법뿐 아니라 항공안전법, 공유수면법을 적용했다. 친정부 단체는 고압가스안전관리법과 옥외광고물관리법까지 들고 나왔다.

그런데도 북한은 적대 정책이 근본 원인이라며 강경일변도다. 그러나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남한에서는 적어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선제적으로 북한을 향해 적대 정책을 편 경우가 없다. 현 정부는 물론이고 보수 정권에서도 북한을 적대시한 적이 없다. 이명박정부는 경평 축구 부활 등을 구상했고, 핵을 포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1인당 소득 3000달러 수준이 되도록 돕겠다는 ‘비핵·개방3000’ 구상을 내놓았다. 박근혜정부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의 화해 정책을 제시했다. 대북 대응이 강경해진 것은 북한이 유발했기 때문이다. 2008년 박왕자씨 피살 사건과 이후 북한의 미온적인 대처,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빼더라도 북의 도발은 숱하다.

북한의 속셈은 결국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라고 남한을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이 대남 삐라를 날리는 비례적 대응을 훨씬 넘어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겠다거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식으로 상황을 계단식으로 악화시키는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그러나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해야 하는 당사자는 기본적으로 북한이지 우리가 아니다. 원인 제공을 한 것도 북한이다. 남한더러 국제 제재를 무시하라거나 미국과의 갈등을 불사하라고 요구한다면 무리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우리는 미국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와도 외교적 조율을 할 수밖에 없다. 고민이 많고 어려운 길이지만 독불장군식으로 일도양단하기 어려운 게 국제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에게 발가벗고 북한 입장에 동조하라고 요구하는 건 비외교적일 뿐만 아니라 예의도 아니다.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로 직접적 타격을 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리스크를 줄일 목적으로 남북 관계 등을 김 제1부부장에게 맡겼고, 그에게 힘을 실을 필요 때문에 완력을 휘두른다는 분석도 있다. 오랜 대북 제재에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중국 접경 폐쇄 등으로 북한의 민생 경제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요인에서든 북한에 우호적인 남한 정부를 상대로 도발적 행동을 계속한다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최근 우리 국민 사이에선 대북 염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평화경제, 남북 철도연결 등을 매번 제안하는데도 ‘삶은 소대가리도 비웃을 노릇’이라고 핀잔을 주는 데 인내심이 바닥나는 듯하다. 압박해서 얻으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라는 태도는 마치 호구 취급을 당하는 듯한 불쾌감을 준다. 남한의 민심 이반은 대북 강경책보다 더 북한에 위험할 수 있다.

북한은 우리에게 이중적 존재다. 같은 민족으로서 함께 번영을 추구해야 하지만 동시에 동족상잔을 겪은 뒤 지금도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적이기도 하다. 이중성에는 이중적으로 대응하는 게 자연스럽다. 대북 강경일변도는 맹목적이지만, 일방적 인내 또한 공허하다. 차제에 북한의 역성을 들어주려고만 하는 정책 기조가 과연 생산적인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상대가 잘못된 길을 걸을 때는 원칙적 대응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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