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윤석열 사퇴’, 박근혜정부 닮을 건가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윤석열 사퇴’, 박근혜정부 닮을 건가

입력 2020-06-22 04:02

노무현정부 때도 장관과 총장 대립했지만 총장 나가라 안해
지금 범여권은 윤석열 흔들기 총공세에 사퇴 강요까지…
朴정권의 채동욱 내몰 때와 흡사
검찰 중립성과 개혁 정당성을 모두 훼손하는 처사로
법치와 제도 부정하는 꼴 아닌가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를 보면 그리 편한 사이는 아니다. 정권을 엄호하는 쪽과 조직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쪽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대립각을 세울 정도로 불편한 관계도 아니었다. 과거에는 거의 대부분 검사 출신이 장관직에 앉았기에 형님, 동생 사이의 소통은 유지됐다. 그러다 둘 간의 정면 충돌이 빚어진 것은 노무현정부 때다. 비검사 출신이 ‘검찰 개혁’이란 막중한 책무를 안고 장관에 오르면서다.

강금실 장관과 송광수 총장의 관계가 그랬다. 여성 법관 출신에다 사법연수원 기수도 총장보다 한참 낮은 장관에게 검찰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강 장관은 단명한 김각영 총장 후임으로 들어선 송 총장과 인사권·감찰권 등으로 대립했다. 와중에 검찰이 여야 대선자금 수사로 대통령 측근까지 감방으로 보내면서 국민 신뢰를 얻자 개혁은 실종됐다.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론이 대두될 땐 송 총장이 “먼저 내 목을 치라”고 할 정도였다. 강단과 배짱으로 조직을 보호한 그는 무난히 임기를 마쳤다.

두 번째 충돌은 참여정부 중반에 일어났다. 2005년 변호사 출신의 천정배 의원이 장관이 됐을 때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터졌다. 김종빈 총장 시절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극한 대립을 했다. 검찰이 강 교수를 계속 구속하려 하자 천 장관은 사상 처음으로 검찰청법에 따른 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수사를 하게 만들었다. 총장은 장관의 지시를 이행한 직후 사표를 냈다. 집권층의 사퇴 주문은 없었다. 조직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총장이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었다. 그때도 검찰은 기득권을 놓지 않았다.

공통된 점이 있다. 시대적 요구인 검찰 개혁이 표류하고 있음에도 집권자가 임명한 총장이 정권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대놓고 나가라 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총장 임기(2년)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던 것 아닌가.

한데 참여정부 정신을 잇는 문재인정부에서 윤석열 총장 사퇴를 강요하는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니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눈엣가시인 윤 총장 찍어내기의 총대를 멘 건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다. 그는 19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각을 세운 지 얼마나 됐느냐”며 “임기 보장과 상관없이 갈등이 이렇게 일어나면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여권이 총공세에 나선 분위기다. 총선 압승에 취한 권력자들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1호 수사 대상으로 지목하며 협박하고, 국회 법사위원장을 차지하자마자 손보기를 공언할 때 알아봤다.

급기야 지난주엔 법사위에서 윤 총장을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했다. 비검사 출신의 추 장관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진정 사건은 감찰 사안인데 인권문제인 것처럼 변질시켰다며 질타했다. 윤 총장이 사건을 대검 감찰부가 아닌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배당한 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결국 추 장관은 감찰부가 ‘중요 참고인’을 직접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5년 만의 수사지휘권 행사치고는 초라하다. 감찰 대상이냐 아니냐도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고, 관련 규정도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다. 누구 말이 옳다 할 수 없는 이유다. 논란을 없애려면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인 장관이 규정부터 정비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도 장관 스스로가 판을 키우고 있다.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본질은 정치권력과 검찰의 아귀다툼이다. 정권이 임명한 윤 총장이 권력 치부를 계속 들추자 배신감이 든 여권이 내치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 때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둘러싸고 황교안 장관과 갈등을 빚다 쫓겨난 채동욱 총장이 생각난다. 정권의 정통성 문제를 건드렸다가 갑자기 터진 사생활 문제로 옷을 벗었다. 당시 공작 냄새가 진동했다. 여권은 그때처럼 사방팔방에서 윤 총장의 목을 조르며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물론 윤 총장이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과도한 수사와 자기권력화, 측근 감싸기 등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도와 법도라는 게 있다. 임기제를 훼손하면서까지 총장을 교체할 중대한 결격사유는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 여권이 무리수를 둔다면 자칫 개혁의 정당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 개혁의 근간인 법치와 제도를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사퇴론은 접어야 한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