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은 구순의 참전용사 “사선의 공포, 기도로 이겨냈죠”

국민일보

손잡은 구순의 참전용사 “사선의 공포, 기도로 이겨냈죠”

[6.25전쟁 70주년] 지경수·오만균 장로의 간증

입력 2020-06-22 00:01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지경수(왼쪽) 오만균 장로가 지난 18일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전쟁의 기억과 신앙 이야기를 들려준 뒤 손을 잡은 채 미소 짓고 있다.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것. 손상기. 1928년생. 복무기간 5년.’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것. 박태규. 1929년생. 복무기간 17년.’

손바닥만 한 종이에 비뚤배뚤 적힌 손글씨엔 글귀를 적을 때의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76개의 글귀 위엔 같은 제목이 달려 있었다. ‘나에게 6·25란.’ 70년 전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한반도의 전장을 누볐던 한국전쟁 참전용사 76명의 증언록엔 6·25에 대한 한 줄의 기억이 첫머리를 장식했다. 그중 한곳에 시선이 꽂혔다. ‘우리나라의 위기였으나 하나님께서 극복하게 해주셨다. 지경수.’

스물넷 청년 지경수는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한 1950년, 대구에서 15일간 군사훈련을 받은 뒤 전선에 투입됐다. 지난 18일 대전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에서 만난 노병 지경수(94·대전중앙교회) 장로는 또렷하게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6사단 19연대 3대대 11중대 1소대에 배치받았습니다. 총알 500발, 수류탄 5발을 받아들고 전투에 나섰지요. 명령은 딱 하나였습니다. 고지를 반드시 사수하라.”

지 장로는 1·4후퇴 후 방어선이 경기도의 평택 용인 이천 여주까지 내려오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1951년 3월 고지 방어에 나섰다. 목숨을 걸고 동고동락했던 전우들이 참호에서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몰려왔다. 그때 스치듯 어머니께서 기도해주시던 음성이 들렸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계획하신 일을 행하시기 위해 늘 생명을 지켜주실 것이다.’

“옆 참호에 포탄이 떨어지고 기관총 탄환이 제 옆으로 쏟아져 귀가 먹먹해졌는데 모든 걸 내려놓고 기도했더니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겼습니다. 4~5m 앞에서 달려드는 중공군들을 사살하고 적의 기관총을 빼앗았지요. 밤새워 전투하고 해가 뜨는 고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부상당한 전우들이 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독백하듯 전사를 풀어놓던 지 장로는 슬며시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봤다. 69년 동안 절뚝거리던 다리였다. 고지 전투 후 적의 동태를 살피며 용문산 전선으로 이동하다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얻은 전흔이다. 그는 “모태신앙으로 자라면서 몸에 배었던 기도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지 장로 옆에서 얘길 듣던 오만균(90·대전 선창교회) 장로는 전쟁 발발 후 피난길에 올랐던 기억부터 꺼냈다.

“가족을 지키려고 피난하던 중에 대전 신탄철교 아래 토굴에서 보수공사를 돕다가 다리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당시엔 ‘왜 이 난리 중에 다리를 다쳐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게 됐나’ 싶었는데 다친 다리 덕분에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어요. 돌아보니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거지요.”

오 장로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낸 군경력증명서를 보여줬다. ‘군번 705476. 1953년 12월 1일 제10전투비행단 하사 임관.’ 그는 피난 생활을 이어가다 첫아들을 얻은 지 4개월 만에 자진 입대를 결정했다. 조국을 지키는 게 곧 가족을 지키는 것이란 생각에 결심이 섰다. 고교 시절 기계 분야를 배웠던 경험을 살려 공군비행단에 지원했고 전투기 정비대 하사로 임무를 시작했다.

“F51 전투기를 수백 번 정비했죠. 통신장치를 확인하고 무기 장착이 완료되면 조종사가 탑승을 준비하는데 통신병 무기병 전우들과 함께 전투기에 손을 대고 무사귀환을 바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출격한 전투기가 무사히 돌아오면 모두 기뻐하며 서로를 다독였고 그러지 못한 날이면 서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어요. 슬프고 무거운 침묵만 가득했어요. 전쟁은 그렇게 잔혹했습니다.”

그는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을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숨 바쳐 지킨 한반도가 평화통일을 이루는 모습을 천국 가기 전에 보고 싶었는데”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구순을 넘긴 두 노병은 손을 꼭 잡은 채 미소를 지어보였다. 눈가 인중 목선 손등 할 것 없이 주름이 깊이 팼지만, 환한 미소만큼은 목에 걸린 호국영웅장 메달보다 빛이 났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지 장로가 오 장로에게 말했다. “오 상사님, 고생 참 많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전쟁의 고통 아픔 없이 잘 살겠지요.”

대전=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