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의 부르심, 하나님 백성으로 삶을 위한 훈련

국민일보

광야로의 부르심, 하나님 백성으로 삶을 위한 훈련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10> 광야를 지나는 영혼

입력 2020-06-2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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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맨 뒷줄 오른쪽 다섯 번째)가 2018년 10월 경북 청송 경북북부 제3교도소에서 열린 법무부 교정기독선교연합회 주최 전국순회예배 후 예배 순서자들과 함께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갖은 고생과 고통으로 소망 없는 나날을 보낸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이유도 의미도 모르며 살아 있는 자체가 고통이며 고생이었다. 자식마저 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망하게 짐승처럼 살다 죽어야 하는 현실이 비참하다 못해 아픔이 됐다. 그리고 잊고 있던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분을 찾는다.

비명에 가까운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었다. 절규와 탄식이 하나님의 가슴을 울렸다. 하나님은 찢어지는 가슴으로 모세를 불러 그들에게 구원 역사를 선포하신다. 그리고 장엄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성을 잘 아시기에 며칠이면 갈 수 있는 지름길로 인도하시지 않았다. 블레셋 사람의 길로 인도하지 않고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40년이란 긴 시간 약속의 땅에서의 삶을 위해 가르치고 여러 훈련을 시키셨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위해서 말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사람을 세우시기 전 광야 훈련을 통과하게 하신다. 물론 그전에 충분한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살겠노라 고백하며 열심을 내고 이제 세상 것을 다 버리겠노라고 결단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정녕 네가 이 길을 가려느냐. 이 길은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길이란다.”

두 번 세 번 다짐을 받고 마음의 준비를 시키시고는 광야로 몰아가신다. 아사셀 염소처럼 말이다. 광야를 지나는 아사셀 염소는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에 피를 철철 흘리며 갖은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 그 죽음의 길을 간다.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맹수들에 대한 두려움과 추위, 배고픔, 죽음같이 엄습해 오는 외로움과 싸우며 눈물로 걷는다.

광야는 길이 없다. 모래바람은 눈을 뜰 수조차 없다. 그러나 밤의 혹독한 추위와 낮의 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혼자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홀로된 채 터벅터벅 모래바람 날리는 길을, 하늘에 마음을 매달고 걷는다. 때론 갔던 길을 다시 두 번 세 번 반복해 걷는다. 그러다 보면 눈물조차 말라 버린다.

탄식마저 잦아들고 그 안에 세상의 것들이 하나씩, 둘씩 사그라지며 그토록 사랑했던 것과 자신에 대한 연민도 주춤거리면 변화가 생긴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미명이 밝아옴을 아는 통찰력이 새살처럼 돋는다. 삼킬 듯 기세등등하던 사막의 뱀과 전갈도 예수 이름 앞에 항복게 하는 능력을 힘입는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강한 군사, 아름다운 신부로 준비된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세상 것들로 겹겹이 덧입혀 있던 죄들이 허물처럼 벗겨진다. 흉물스럽던 속살이 주님의 사랑으로 물들어 이젠 민들레 홀씨처럼 성령의 바람을 따라가는 곳곳마다 그 사랑을 전한다. 아름다운 예수의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광야는 초대받기 싫은 식탁이며 마시기 싫은 쓴잔이다. 하지만 그것이 생명으로 연결되는 통로다. 아이를 잉태하면 반드시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생명을 볼 수 있듯 신앙은 광야를 지나야 비로소 참 생명이 된다.

하나님께선 오늘도 광야를 지나며 고난의 풀무 중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위로하신다. 수고와 애씀, 많은 오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따르고자 애쓰는 그 걸음들을 아신다. 하나님의 의중을 묻고 또 물으며 그 뜻을 따르기 위해 마음의 전쟁을 수없이 치르는 모습을 보신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찬양하며 부르던 그 고백을 기억하고 계신다.

주님은 그 어려움을 통해 우리에게 엉겨 붙었던 세상 사랑이 분리되며 오는 고통을 알게 하신다. 찌든 세상 사랑의 때를 씻기며 아름다운 신부로 세워 가신다.

세팅된 무대처럼 변화하지 않는 환경을 보고 지루해하며 다른 무대를 꿈꾸지 말자. 세팅된 무대에서 무용수가 춤을 추듯이 우리는 그 환경에서 춰야 할 춤이 있고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

토기장이가 두 번 세 번 토기에 유약을 발라 거듭 가마에 굽고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연마하는 이유가 뭘까.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다. 고난 가운데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은 우리를 강하고 아름답게 빚으시는 그분의 손길과 같다.

파도가 넘실거리며 대지를 위협한다. 철썩거리며 바위를 치고 소란을 피워도 물은 경계를 넘지 못한다. 아침이면 달을 거두고 다시 해를 띄우는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이 오늘도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며 인도하신다. 고난의 때에는 더욱 물의 경계를 정한 세상의 주관자인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연단의 목적은 하나님의 성품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택한 자에 대한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형통한 자가 돼야 한다.

겨울과 봄, 여름과 가을을 지나야 과실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우리에게도 각자 꽃처럼 피고 열매 맺어야 할 하나님의 계절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아름다운 꽃이며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견뎌 내는 아름다운 신부가 되자.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처음 따라간 금식기도원서 “광재야” 음성 들어

1980년 어린 나이의 서울 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송죽회에서 나온 나는 어떤 조직에 잡혀가 신문팔이, 껌팔이를 했다. 고사리손으로 온종일 열심히 번 돈은 날마다 조직원들에게 빼앗기고 많이 맞았다.

앵벌이를 한 적도 있다. 육교 위에 조그만 상자를 놓고 엎드려 구걸했다. 살을 에는 추위에 이렇게 하다 얼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배고픔에 시달린 날도 많았다. 그 당시 서울 생활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추위를 피해 보려고 지하도에 엎드려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동전을 던져 줬다. 얼마쯤 지났을까. 내 손에 지폐를 꼭 쥐여 준 사람이 있었다. 그 손의 온기에 얼굴을 들었다. 어떤 외국인이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따스함이 내 몸을 감쌌다. 내 손에 쥐어진 1달러, 그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랑이 느껴졌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그 외국인은 어린 나에게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존재였다. 주님의 아가페 사랑은 메마른 가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따스한 가슴의 온기로 데워 줬다.

앵벌이 생활은 거리에서 팝콘 장사를 하는 김용복이라는 형을 만나면서 끝이 났다. 그 형은 어머니, 내 또래인 동생 김용성과 함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 형의 어머니는 내 처지를 듣더니 나를 거둬 주었다. 그날부터 나는 그 집 다락방에 같이 살면서 팝콘을 팔았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 음악다방, 여의도공원, 광화문 거리 등지를 돌아다니며 어른들에게 팝콘을 내밀었다. 그 당시 팝콘 한 봉지에 300원이었다. 한 봉지를 팔면 100원이 나에게 주어졌다. 일은 고됐지만 귀엽다고, 붙임성 있다고 팝콘을 사 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루에 50봉지 이상 팔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 아주머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집사여서 두 아들과 함께 내게도 신앙교육을 했다. 형은 식사 때 기도를 하면서 내게 ‘아멘’ 하는 것을 가르쳐 줬다.

어느 날 온몸에 옴이 옮아 가렵고 짓무르기 시작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점점 심해졌다. 아주머니는 어려운 살림살이와 내 문제 때문인지 기도를 하기 위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주일 금식 기도를 하고 집으로 들어오더니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 광재의 옴이 나았다”고 선포했다. 신기하게도 아주머니 말씀대로 옴이 없어지는 것을 체험했다.

아주머니는 두 아들과 나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보내 3일 금식기도를 하라고 했다. 처음 간 기도원의 분위기에 숙연해졌다.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지만, 성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사람들 속에서 기도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함께 기도하던 형과 동생은 배가 고프다며 매점으로 갔다. 그런데 그 순간 “광재야”하는 음성을 들었다.

매일 듣던 익숙한 형의 목소리도, 또래 친구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분명 다른 목소리였다. 너무 신기해 얼떨떨해 있는데 형이 나가자며 데리러 와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그 신기한 체험이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삶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안에 있었다. 주님께서는 어떤 순간에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연단을 통해 그분의 커리큘럼 안에서 인도하고 계셨다. 힘들고 어렵고 모질었던 삶은 쓸모없고 허무했던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자원인 것이다.

정광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