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인간을 잇는 천상의 소리 교회와 세상 잇는다

국민일보

하늘과 인간을 잇는 천상의 소리 교회와 세상 잇는다

국내 유일 파이프오르간 장인 홍성훈 집사

입력 2020-06-2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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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파이프오르간 장인 홍성훈 집사가 지난 15일 경기도 양평 국수교회에 있는 ‘산수화 오르겔’ 앞에 앉아 있다. 홍 집사의 13번째 작품인 산수화 오르겔에는 3개의 산봉우리와 능선, 은하수 등 양평의 자연이 담겨있다. 양평=신석현 인턴기자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작업실 한가운데에 너비 3.5m 높이 4.5m의 사각형 나무 뼈대가 세워져 있다. 왼쪽에는 다양한 크기의 긴 나무 파이프가 빼곡히 쌓여 있고, 뼈대 앞 테이블 위에는 2단의 흑백 건반이 있다. 각종 목공 도구와 나무판자가 곳곳에 놓여 있고, 테이블마다 나무 먼지가 수북하다. 파이프오르간 장인 홍성훈(61·새사람교회) 집사의 경기도 양평 작업실이다.

파이프오르간은 400년의 역사를 가진 악기지만, 국내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짓는 장인은 홍 집사가 유일하다. 그는 독일교포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독일 정부의 공인 자격인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를 얻었다. 제작 중인 파이프오르간은 전북 전주기전대에 세워질 예정이다. 800여개의 파이프가 들어가 고개를 들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크지만, 파이프오르간 중에서는 작은 크기에 속한다.

많게는 수천 개의 파이프가 들어가는 파이프오르간은 ‘피리의 군락’이다. 건반을 누르면 파이프의 바람 마개가 열리고 그 사이로 바람이 빠져나가면서 피리처럼 소리를 낸다. 옛날 학교 교실마다 있던 풍금과 같은 원리다. 홍 집사는 “파이프부터 모든 부속품을 손수 만들어야 해서 제작 기간이 최소 2년 이상 필요하다”며 “설계부터 디자인 목공 컴퓨터시스템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만들어 내는 예술작품인데 마이스터는 이를 총괄하는 감독 역할”이라고 말했다.

홍 집사는 파이프오르간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하늘의 소리에 가장 가깝도록 발전해 온 악기”라고 소개했다. 그는 “파이프오르간은 400년 전부터 유럽의 장인들이 자연의 소리를 모방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소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지 연구해 온 결과물”이라며 “영혼의 감동을 통해 헌신을 끌어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님과 인간을 잇는 통로이자 특별한 봉사자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홍성훈 집사가 지난 15일 경기도 양평 작업실 2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현재 제작 중인 20번째 파이프오르간의 설계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양평=신석현 인턴기자

그가 파이프오르간을 처음 만난 건 중학교 때다. 당시 그가 다니던 서울 연동교회(김주용 목사)에 파이프오르간이 지어지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시립가무단에서 무용을 할 때도 무대였던 세종문화회관에 파이프오르간이 있었다.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파이프오르간의 실체를 알게 된 건 독일에서다. 기타를 배우기 위해 떠난 유학길에서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듣고 홀리듯 도제 생활을 시작했다. 12년 반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장인이 됐다.

“독일에서 들은 파이프오르간 소리는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어요. 들을수록 화평해지고 동시에 저 자신을 휘몰아치는 소리였습니다. 중학교 때와 가무단 시절 파이프오르간을 만난 것, 한 분야에 정착하지 못하고 무용과 기타 등 여러 예술을 경험한 것도 다 예비하신 길이라는 걸 깨달았죠. 유럽연합 출신이 아니어서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다 극복하고 독일에서 마이스터가 될 수 있었던 건 신앙의 체험이자 간증이었습니다.”

파이프오르간은 대형교회나 대성당, 공연장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홍 집사의 악기들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 온 후 처음 제작 요청을 받은 곳도 개척교회인 경기도 용인 수지의 아름다운동산교회(김재남 목사)였다. 20개의 작품 중 16개를 교회에 지었는데 상당수가 개척교회 혹은 작은 교회였다. 10명 남짓 들어가는 양평 청란교회(송길원 목사) 채플실에는 가로세로 1m 정도의 작은 파이프오르간이 놓였다. 은퇴자금을 모두 건네며 제작을 요청한 목회자도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처럼, 파이프오르간의 아름다운 소리도 일부 교회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전해졌으면 좋겠다. 평생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홍성훈 집사의 작업실 전경. 가운데에 제작 중인 파이프오르간 뼈대가 세워져 있다. 양평=신석현 인턴기자

홍 집사가 2015년 크라우드펀딩으로 소형 파이프오르간인 ‘바람피리 오르겔’을 만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홍매화가 그려진 바람피리 오르겔의 200여개 파이프에는 각각 후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는 “후원자들이 전국의 문화 소외지역을 찾아가 연주회를 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줬다”며 “제가 소장하고 있지만, 절대 팔지 않고 시골 도서관 등 곳곳에 가서 소리를 들려줄 것”이라고 전했다.

‘바람피리’ ‘산수화’ 등 그의 파이프오르간에는 이름처럼 한국의 색깔이 묻어난다. 홍 집사의 독일인 스승은 그에게 한국의 문화를 담은 ‘홍오르겔’을 만들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양평 국수교회(김일현 목사)에 지은 열세 번째 오르간 ‘산수화 오르겔’은 그에게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둥그런 형태의 예배당 가운데 자리한 산수화 오르겔에는 파이프로 만든 둥그런 산봉우리 3개에 흐르는 강과 능선, 뻐꾸기, 그리고 은하수를 형상화한 수백 개의 불빛이 담겨 있다.

“교회는 어차피 십자가니까, 하나님이 지어주신 창조물을 담아서 예배당 앞에 두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예배당 문을 열면 양평의 자연이 펼쳐지는 그림을 그렸죠. 양평 시골에서 일바지를 입고 오신 할머니 성도들이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음미하면서 평가를 하세요. 이처럼 예술로 가득 찬 교회에 한국의 문화가 된 파이프오르간을 짓는 게 제 소명입니다.”

양평=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