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저를 도와주시겠어요?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저를 도와주시겠어요?

입력 2020-06-2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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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소녀의 탈출기가 온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하고 있다. 작은 여행 가방에 갇혀 죽어간 천안 소년의 이야기에 놀란 가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듣게 된 사건이라 더 충격적이었다. 돌이켜보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장 친밀하고 안전한 곳이어야 하는 가정에서, 맞아 죽은 아이의 주검이 밀랍화돼 발견되고 화장실이나 베란다에서 동사한 채 발견됐다. 어찌 보면 이번에 창녕 소녀는 스스로 탈출을 결심하고 실행했기에 그 처참한 비극을 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를 좀 도와주시겠어요.” 눈은 온통 시퍼렇게 멍들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불에 지져진 채로, 맨발의 아이는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거기까지 오는 동안 있었던 아이의 여정을 들으며 많은 어른이 눈물을 삼켰다.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0m 높이 45도 경사의 지붕을 맨발로 지나 옆집으로 빠져나온 뒤에도, 곧바로 도망치면 또 붙잡혀 올까 봐 물탱크 구석에서 7시간을 숨어 있었단다. 그러고도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도로변이 아닌 논둑을 따라 돌고 돌아 도망한 공포의 대상이 친엄마라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아이가 너무 예의 바르게 도움을 요청하더라고요.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해서 우선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좀 사줬고….” 처음 아이를 발견한 시민에게 사람들은 댓글로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부모에게 희망이 없다면 선생님은 뭐 했냐고, 화난 민심은 누구라도 탓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온라인 수업을 하게 만든 코로나라도 주범으로 데려와 경을 치고 싶은 심정일 거다. 하지만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학용품을 챙겨 세 번이나 집을 방문했단다. 그러나 아기가 있다면서 외부인의 접촉을 막은 엄마로 인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하긴, 부모가 뻔히 보는 앞에서 선생님이 행여 “부모님이 너를 때리니” 물었더라도 아이는 선뜻 사실을 드러내기 힘들었을 거다. 나와 더 오래 지내야 하는, 그리고 나를 향해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른, 그 앞에서 어찌 ‘나는 아동폭력의 피해자’라고 또박또박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도 엄마냐 따지고 정신병력까지 호소한다는 한 개인의 나약함이나 사악함만을 탓하기에 아이들의 안녕과 생존은 너무 간절하고 긴급한 문제다. 하여 적어도 선생님, 경찰, 지역보호사(교회 목사님도 포함) 등 공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아동 긴급면접권’을 나라에서 보장했으면 좋겠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부모 없는 안전한 곳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만나는 그런 권한 말이다. 동네 어른들도 거들어야 한다.

창녕 소녀처럼 눈에 띄게 뚜렷한 멍이나 상처만이 아동학대의 정황인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가동됐던 레이더망을 ‘우리’ 아이들을 위해 펼쳐야 한다. “아니, 아직 어린 애가 어떻게 저런 저질스러운 성적 농담을 하죠.” 만약 그런 아이를 본다면 비난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혹시 그 아이가 어린 나이에 성적 학대를 받은 것은 아닌가.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르겠고 옷도 꼬질꼬질, 아휴 엄마도 없나 봐.” 혀를 찰 일이 아니다. 혹시 방임이나 방치된 아이가 아닐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득 지역교회가 얼른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마다 있는 교회 어느 한 공간만큼은 24시간 불이 켜 있고 순번제로라도 따듯하고 지혜로운 어른들이 늘 기다리고 있어서, 그냥 거기로 뛰어 들어가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교회의 존재 이유 아닌가. 이 땅에서의 삶을 안전하고 풍성하게 살도록 어린 생명을 구하는 일은, 영혼 구원만큼이나 귀한 사명이다.

백소영 (강남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