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다수결 원칙

국민일보

[여의도포럼]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다수결 원칙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입력 2020-06-25 04:02

의회 독재인가 아니면 일하는 국회인가. 코로나 위기로 세계의 지정학적 상황이 급변해 그 어느 때보다 국민통합이 필요한 시점에 국회는 또다시 두 동강이 났다. 176석으로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단독으로 선출하면서 21대 국회는 시작부터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이 가장 신뢰하지 않는 집단이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니 짜증부터 난다. 코로나 사태로 가뜩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국회는 이 모양이니 정말 진저리가 난다. 이런 사태가 국민의 정치 무관심이나 혐오증으로 발전할까 두렵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정치를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당이 국민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포퓰리즘은 정치를 감성적 소비상품으로 만든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개인의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포퓰리즘 정치는 내용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사람들은 국회가 왜 이 모양인지,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숙의 정치가 가능한지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까지의 이미지가 ‘싸우는 국회’였다면, 앞으로는 ‘일하는 국회’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논의의 핵심은 ‘국회가 어떻게 해야 일을 잘하는가’라는 문제로 압축된다.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은 다수결 원칙에 따라 시대가 요청하는 각종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일하는 국회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협치를 강조하면서 최소한의 견제가 가능하도록 관례에 따라 법제사법위원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민주당은 남은 상임위원장도 독자적으로 선출하겠다고 협박하고, 통합당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의회독재라고 저항한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협의와 타협은 없고, 갈등과 충돌만 난무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정말 ‘의회 독재’인가 아니면 다수결 원칙에 따른 ‘일하는 국회’인가. 전원일치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다수결 원칙은 민주사회의 의사 결정 방식이다. 일인 독재도 아니고 과두제도 아닌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 지배방식이다. 다수결 원칙을 최초로 제시한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는 ‘다수 속에 전체가 있다’고 전제한다. 다수 속에 국민 전체의 의지가 반영되며, 그러므로 다수의 판단이 소수의 판단보다 더 합리적일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다수는 합리적으로 전체를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적 다수결 원칙의 전제조건이다. 이는 간단하지만 쉽지 않다. 우선 다수가 결코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득표율은 49.9%로 통합당 득표율 41.5%보다 8.4% 포인트 많다. 그렇지만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로 인해 국회의 의석수 비율은 무려 26% 포인트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다수의 판단이 소수의 판단보다 합리적이긴 한가. 한 사람의 의견이나 집단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결코 의사 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소신 투표를 했다고 민주당이 금태섭 전 의원을 징계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당내 의사 결정이 민주적이지 않은 정당의 다수 의견은 결코 합리적일 수 없다.

민주주의는 합리적 심의와 합의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다수결 원칙은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분한 심의를 거친 후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다. 다수결 의미를 단지 계량적으로 이해해 소수 의견을 배척하면, 다수의 횡포는 중우정치를 가져올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로도토스는 다수결 원칙의 또 다른 전제조건을 말한다. 다수결은 지배자가 언제든지 피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권력의 순환을 전제한다. 다수는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며 언제든지 소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적 다수결 원칙은 항상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해야 한다.

그런데 운동권 기질을 버리지 못한 집권 여당은 숫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한다.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효율성만을 강조했던 과거 보수 세력에 저항했던 민주화 운동 세력이 이제는 거꾸로 효율의 이름으로 협상과 타협의 정신을 폐기하려 한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것일까. 외부 견제세력도 제거하고 내부 비판 세력의 싹도 잘라버린 집단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게 마련이다. 수에 집착한 다수결 원칙이 민주주의를 배신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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