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은 물질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신앙의 고백

국민일보

헌금은 물질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신앙의 고백

류응렬 목사의 창세기 산책 <8>

입력 2020-06-2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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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응렬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사(오른쪽)가 정혜진 사모(왼쪽)와 함께 지난 4월 미국 버지니아주 마나사스 시니어 아파트를 방문해 쌀 라면 김 등을 전달하고 있다.

중국의 한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헌금과 관련된 주보 광고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헌금이란 신앙으로 하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교회에 처음 나온 분들은 헌금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이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까요. 광고를 보며 제가 준비한 게 헌금인지, 그냥 물질인지 생각했습니다. 절차에 따른 헌금인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신앙의 고백인지 되물었습니다. 가난한 교회였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주보 광고로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동일하게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똑같은 기도라도 하늘을 움직이는 기도가 있고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 같은 기도가 있습니다.

신앙이란 종교적 형식이나 습관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헌금은 물질이 아닙니다. 모든 걸 주신 하나님께 청지기 된 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는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고 자녀인 가인과 아벨을 낳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 드렸다는 내용을 통해 제사 제도를 처음 언급합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예배하는 방법을 아담과 하와에게 배웠을 텐데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요.

제물 자체의 차이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지만, 가인은 평범한 땅의 소산을 제물로 드렸다는 겁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은 제물 자체의 경중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분이 아닙니다.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은 피가 없는 제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이 주장도 맞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가 짐승을 제물로 가져오지 못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1000마리 숫양의 번제보다 우리의 정직과 겸손을 원하십니다.

문제는 제물 자체에 있었던 게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신앙이나 자세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믿음과 제물을 모두 받았고 반대로 제물은 물론 가인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신약성경은 이 부분을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아벨과 달리 가인은 자신의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자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창 4:5) 제대로 된 신자라면 하나님이 자신의 예물을 받지 않으면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께 분노하는 가인의 얼굴은 평소 그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시고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 4:6~7)고 물으십니다.

가인을 책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하는 목자의 심정이 드러납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물은 신앙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헌금을 단순히 물질로 봐서는 안 되듯이 예배도 단순한 종교의식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예배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고, 봉사는 주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일입니다.

신앙이 오랜 기도와 해박한 성경 지식, 많은 전도, 열정적인 봉사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방향과 목적이 정해진 삶이 곧 예배입니다.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에 출석하는 것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삶 속에서 매 순간 내가 죽고 주님이 사는 것입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게 진정한 영적 예배입니다.

가인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던 동생을 무참히 죽이는 가인의 모습에서 타락의 물결이 인간을 완전히 지배했음을 발견합니다. 살인자 가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아담처럼 가인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의 대답은 평소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 우리의 반응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떤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 음성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죄악과 허물을 주님 앞에 고하고 십자가의 은총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지만, 당신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심판은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심판 중에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녹아 있는 증표를 주셨습니다. 가인에게 주신 증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죽음의 심판에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류응렬 미국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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