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공짜’에 갇힌 데이터 노동

국민일보

[돋을새김] ‘공짜’에 갇힌 데이터 노동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입력 2020-06-30 04:04

오전 5시5분, 눈을 뜨고 베개 옆 스마트폰부터 주워든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뉴스 소비자(독자)들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살펴본다. 포털의 인공지능(AI)은 여러 매체에서 쏟아낸 콘텐츠 가운데 내가 선호할 만한 걸 골라낸다. 고생이 많다, 복잡한 내 취향을 파악하느라.

이런 저런 기사를 보다 페이스북을 연다.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쏟아낸 사진과 게시물을 보면서 ‘좋아요’ 등을 누르다 보면 시간은 훌쩍 뛴다. 지하철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신문 스크랩 앱, 포털 앱, 페이스북 앱을 부산스럽게 오간다. 온갖 광고들은 불쑥불쑥 머리를 들이민다.

사무실에 와서도 스마트폰과 PC로 끊임없이 사이버 공간에 ‘흔적’을 남긴다. 점심식사 약속을 잡은 식당을 검색하고, 대중교통 이용 경로를 찾는다. 보고서 처리로 출발이 늦자 택시 앱을 켰다. 미리 등록한 신용카드로 자동 결제하는 차량을 부르고 나서 사용 기록을 보니, 이달에 택시를 너무 많이 탔다.

반가운 얼굴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어느 곳엔가 있을 ‘서버’들은 자세하게 장소를 설명해 달라고, 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알려 달라고 칭얼댄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고, 더이상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기까지 난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생산하고 소비했을까.

데이터는 거대한 보물창고다.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닿지 못했던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 정부, 전문가 가릴 것 없이 데이터를 ‘21세기 자본’ ‘새로운 석유’라고 부른다. 그러나 데이터는 그냥 땅에 묻혀 있는 천연자원이 아니다. 내가 또는 우리가 생산해야만 존재하는 자원이다. 그런 데이터를 공짜로 가져가도 되는 걸까. 일상에 편리함을 더해주는 여러 서비스를 구축하고 제공하는 걸로 충분한 대가를 치르는 걸까.

2004년 설립된 페이스북은 올해 6월 현재 자산 101조5000억원, 매출 49조원의 공룡으로 성장했다. 일일 이용자는 16억2000만명, 이용자 1명당 평균 매출은 7달러에 이른다. 이용자들이 ‘생산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페이스북은 딱히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유튜브도 비슷하다. 유튜브 콘텐츠 공급자는 1000뷰당 2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5분짜리 영상을 올렸다면 1분에 0.4달러를 받는 셈이다. 구글이 밝힌 유튜브의 지난해 매출은 151억5000만 달러(약 18조원)다.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수많은 형태·내용의 데이터를 쌓고 활용하면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뉴스부터 음악, 영상, 블로그 글에 이르기까지 생산자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가치를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공짜 데이터 노동’이 데이터 경제의 앞길을 어둡게 만든다. 기업들은 치열하게 데이터 축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공짜 또는 헐값에 제공하는 데이터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지속성이 떨어지고, 품질은 낮기 마련이다. 데이터 노동을 ‘유효한 노동’ ‘대가를 줘야 할 노동’으로 인정하면, 데이터 독점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 방대한 개인 데이터를 공공재로 격상하면, 공정하고 건강한 경제 구조를 세울 수 있다.

전통적 일자리가 AI 파도에 쓸려가고 남는 자리를 데이터 노동이 채울 것이다. 노동에 재미와 게임이 뒤섞이는 날이 멀지 않았다. 게임을 하듯 즐기면서 생산한 데이터가 유용한 자원이 되는 미래가 곧 다가온다. 그래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와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데이터 노동을 ‘공짜 노동’의 골방에 처박아 둘 순 없지 않은가.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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