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신붓값

국민일보

[제주에 산다] 신붓값

박두호(전 언론인)

입력 2020-07-04 04:07

A씨는 지난달 20대 후반 아들을 장가보냈다. 결혼 전 신부 집에 2000만원을 보냈다. 신부 집에서는 그 가운데 1000만원을 되돌려 보내왔다. 시댁 식구들에게 보내는 예단비다. 셈을 하면 결혼 전에 신랑 측은 신부 측에 1000만원을 준 것이다. 신부 측은 이것을 신부 혼수 비용으로 사용한다. 결혼식 전 신랑 가족과 신부 가족은 별도 장소에서 하객을 초청해 따로 피로연을 했다. 신혼집으로 시내 전세아파트를 얻었다. 일부를 신혼대출하고 나머지 모자라는 부분은 신랑 부모가 보탰다. 결혼비용의 대부분을 신랑 측이 부담한 것이다. 제주도의 일반적인 결혼 셈법이다.

B씨는 최근 아들을 장가보내며 육지 며느리를 얻었다. 30대 후반 아들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신부도 직장인이다. 제주 관습대로 결혼 전 돈을 보내려 하자 신부 측에서 사양했고 결혼식은 주례가 없는 간소한 형식이었다. 피로연 비용은 양측이 하객 수대로 나눠 계산했다. 부모는 아들 장가보내는 데 돈 한 푼 쓰지 않았다. B씨는 제주도에 돌아와 하루 뒤 친척과 지인들을 위한 피로연을 열며 육지 며느리를 보며 겪은 새로운 결혼문화의 충격을 하루 종일 하객들에게 설명했다.

지참금이란 신부가 결혼할 때 살림 밑천으로 친정에서 시집으로 가지고 가는 돈을 말한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반대로 신랑이 신부 측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오랜 관습이다. 이 관습은 젊은이들 사이에 항상 논란이다. 전통이니 괜찮다, 돈으로 신부를 사는 것이니 옳지 않다며 공방한다. 그러나 많은 연구는 세계 어디에나 신랑 쪽에서 신부의 가족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이른바 신붓값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양가의 관계를 공고히 해두자는 의미와 신부가 잘 대접받을 것이라는 약조, 그리고 신부의 가족에게 생기는 손실에 대한 대가라고 해석한다.

제주도라면 신붓값 관습이 생길 충분한 상황 조건을 갖고 있다. 과거 남자는 집안일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는 반면 여자는 어릴 때부터 물질을 하고 밭일을 하고 살림을 했다. 집안의 중요한 노동자산이다. 그들이 눈이 맞았든 중매를 했든 결혼과 동시에 이 자산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동한다. 이 집에 생긴 자산의 손실을 저 집이 보상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사회 집단인가.

젊은이나 외지인에게는 거부감이 있지만 제주도에서는 여전히 시집보내는 것을 판다고 한다. 딸 시집보냈냐는 ‘똘 폴암수꽈’이고 딸 시집보내니 오시라는 말은 ‘똘 폴암시난 왕 봅써’가 된다. 50대 네댓 명이 앉은 자리에서 물었다. 하나같이 지금도 판다는 말을 예삿말로 쓴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라 지금도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했다. 팔았다는 개념은 신붓값으로 풀어야 한다.

이 글을 준비하며 신붓값이란 말이 참 거북했다. 그런데 거북한 건 기존 관념으로 본 내 기준일 뿐이지 사실은 보편적 결혼문화의 한 형태였다. 함은 신붓값의 변형이고 지참금은 신랑값 아닌가. 신붓값, 차라리 내놓고 많이 주면 좋겠다. 틀린 것이 아니라 제주도이기 때문에 다를 뿐이다.

박두호(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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