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김종철 선생님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김종철 선생님

입력 2020-07-01 04:03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지난주 세상을 떠나셨다. 향년 73세. 선생의 갑작스러운 별세는 생태위기에 맞선 우리 시대의 가장 신실한 목소리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슬픔과 아쉬움이 더 크다. 누가 선생의 빈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선생은 내게 그런 분이셨다. 학생 기자 신분으로 선생을 인터뷰한 1990년대 중반부터 선생의 말과 행적을 지켜보며 지금껏 실망한 적이 없었다. 선생의 얘기는 때론 너무 크고 때론 너무 근본적이어서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중요하고 진실한 이야기라는 점은 분명했지만 현실을 변화시키는 이야기로서는 너무 멀고 무력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보적인 사상가로서, 실천적인 지식인으로서, 탁월한 편집인으로서 선생에 대한 존경을 거둬들인 적은 없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어른도 찾기 어려웠다.

선생은 1991년 11월 대구에서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한 이후 지금까지 29년간 물질주의와 산업문명을 비판해왔다. 돌이켜보면 그 세월은 물질주의가 극성을 부려온 세월이기도 하다. 진보, 보수 구분 없이 모두가 성장과 경제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선생은 그런 세월을 ‘자발적 가난’ ‘농경적 삶’ ‘공생의 윤리’ ‘생명의 문화’ 같은 말들을 붙잡고 맞서왔다.

선생과 녹색평론이 없었다면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생태주의는 그 씨앗을 보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선생이 지키고 키워온 생태주의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대전환을 요구하는 사상으로 어느새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물질주의의 파탄과 환경 위기가 분명해지면서 생태주의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선생은 선지자였다.

선생의 목소리가 더욱 필요해진 시점에 세상을 떠나신 것이 안타깝다. 선생이 평생을 일궈온, 분신과도 같은 잡지 녹색평론의 미래에도 신경이 쓰인다. 영문과 교수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던 선생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홀로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2004년부터는 교수직도 버리고 녹색평론 발행인으로 살아왔다. 녹색평론은 2020년 5·6월호(172호)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결호도 없이 30년 가까이 지속해왔다. 창간 이후 지금까지 제호나 판형, 편집 등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사무실을 대구에서 서울로 옮긴 것이 두드러진 변화라면 변화였을 것이다. 출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 명의 편집인이 30년 가까운 세월 한 잡지를 만들어왔고, 그 잡지가 그 긴 시간 일관된 주제와 태도를 유지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잡지라는 쇠락한 매체, 생태주의라는 급진적 사상, 교수직을 던져버린 중년의 지식인, 이 조합이 녹색평론이었다. 그 잡지가 29년을 이어왔고,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잡지 중 하나가 됐다. 그 잡지를 읽는 자발적 독자모임이 전국에 수십 개나 된다.

선생이 소규모 종이 잡지를 사상의 수단으로 선택했다는 점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선생은 담론과 출판 시장의 틀을 벗어난 독립적인 ‘공간’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가 만든 녹색평론이라는 지적 공간은 허술해 보였지만 오랜 세월 훌륭하게 역할을 해왔다. 무엇보다 비즈니스의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마음껏 하고 싶은 얘기를 해왔다. 이제 선생은 땅으로 돌아가셨다. 선생이 떠나신 뒤 발표된 추모의 글들을 찾아 읽으며 ‘김종철이라는 사상’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깊어지는 생태위기의 시대에 선생의 이름은 오랫동안 불릴 것이다.

김남중 국제부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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