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법관대표회의 선언 후 2년이나 흘렀건만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법관대표회의 선언 후 2년이나 흘렀건만

입력 2020-07-01 04:01

헌법에 법관을 국회 탄핵소추 대상으로 규정한 건
필요한 경우 그 권한 행사하라는 취지
개인의 생사 가르는 재판 조직의 이익 위해
거래한 법관 법복 입을 자격 없어

근대 법 체계가 확립되기 이전 인간에 대한 심판은 절대자의 영역이었다. 교회 권력이 세속 권력보다 강했던 중세시대에는 신의 이름으로, 절대왕정시대에는 왕의 이름으로 형의 집행이 이뤄졌다. 오롯이 절대자의 몫이었던 심판이 법의 영역으로 들어온 건 오랜 투쟁의 산물로 시민의 권리가 확대되기 시작한 근대 이후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인간이 인간의 죄를 심판할 수 있나’ 하는 인류의 해묵은 철학적 회의가 해소된 건 아니다. 법을 만들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 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체적 생명은 물론 정치적, 경제적 생명까지 박탈할 수 있는 곳이 법원이다. 이런 권한을 가진 법원의 심판이 잘못될 경우 그 피해는 치명적이고, 그 이전의 원상태로 되돌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재판의 경우 특히 그렇다. 단적인 예가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사법부의 상징 디케는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엔 칼을 들고 있다. 재판에 임하는 법관의 자세가 공평무사해야 한다는 일깨움이다.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법관의 신분도 특별히 보장하고 있다. 외부 압력은 물론 법원 내부의 간섭에도 흔들리지 말고 소신껏 판결하라는 취지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이런 믿음이 있어야 유지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법과 양심에 따라 이뤄지지 않은 재판이 비일비재하다. 군사독재 시절 유죄 판결을 받았던 시국사건 가운데 재심을 통해 무죄로 바뀌는 것이 숱하다. 이들 사건은 오래전 일이고, 불가항력이었던 시대의 아픔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재판에 관여했던 법관들도 세상을 떠났거나 법복을 벗은 지 오래다. 이들에게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묻는 건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사법농단 사건은 얘기가 다르다.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하여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하여 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하여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 절차 진행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 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라는 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한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대표판사 114명이 2018년 11월 의결한 선언문의 일부다. 선언문은 105명이 표결에 참여해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됐다. 법원 내에서 사법농단 관련 법관들에 대해 탄핵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2년이 다 돼가는데 여태 아무런 진척이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징계 청구한 사법농단 관련 법관 13명 중 5명이 불문 또는 무혐의 처분, 8명이 경징계를 받은 게 고작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으니 결과가 뻔하다.

법관은 국회의 탄핵소추 대상이다. 헌법에 이 규정을 둔 건 필요한 경우 그 권한을 행사하라는 취지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린 중대한 헌법유린 사건에서조차 이 권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 조항은 한낱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법적 책임도 함께 물어야 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검찰의 영장청구 시도는 번번이 법원의 방패에 막혔다. 국정농단에 대한 법적, 정치적 책임 추궁은 이뤄졌다. 반면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사법농단의 경우 극소수를 제외하고 어떤 법적, 정치적 책임 추궁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 기능은 행정권력을 견제, 감시하는 데만 있지 않다. 사법권력에 대한 견제, 감시 기능도 그 못지않게 작동돼야 한다.

개인의 생존이 걸린 재판을 조직의 이익을 위해 거래한 법관들은 법복을 입을 자격이 없다. 이들이 법관 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국민 모독이고 반헌법적 행위다. 탄핵은 사실상 법적 책임 추궁의 길이 막힌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13명 모두 탄핵당할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 이들 외에 더 있을 수도 있다. 행위의 경중을 따져 신중하게 처리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은 온전히 국회의 몫이다. 국회의 판단 결과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법관이 있으면 헌법재판소에 최종 결정을 구하면 그만이다. 국회가 당연한 이 권한 행사를 시도조차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국정농단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법농단 사건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기본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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