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경비실 에어컨 설치 시 우려사항

국민일보

[창] 경비실 에어컨 설치 시 우려사항

이용상 뉴미디어팀장

입력 2020-07-04 04:06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면 우리 사는 세상에 위기가 닥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2017년 한 아파트 주민이 그 이유를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한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됐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첫째, 매달 입주민들의 관리비가 죽을 때까지 올라간다. 둘째, 공기가 오염된다. 셋째, 공기가 오염되면 수명이 단축된다. 넷째, 지구가 뜨거워지면 짜증이 나서 주민 화합에 방해가 된다. 다섯째, 더 큰 아파트에서도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주지 않았다.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면 이런 심각한 문제들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가족인 경비원들이 폭염에 힘들든 말든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면 안 되는데 일부 아파트 경비실엔 이미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4월 아파트 경비실 에어컨 설치 실태를 조사했는데 경비실 8763곳 중 5569곳(64%)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10곳 중 6~7곳은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 관리비를 올렸고, 공기 오염으로 인간 수명을 단축시켰으며, 지구온난화를 부추겨 주민 화합도 방해한 것이다. 지난해 대전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었는데 매달 전기료가 주민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부결됐었다. 당시 한 주민이 매달 내야 할 전기료를 따져봤는데 무려 ‘100원’에 달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는 지난해 아파트 경비실 에어컨 설치 확대 사업을 펼쳐 석 달 만에 에어컨 달린 경비실을 6385곳으로 늘렸다. 우리나라, 아니 지구를 망치려고 작정했다고 볼 수 있겠다.

기상청은 올여름 우리나라의 폭염이 20~25일 동안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평년(9.8일)의 배 이상이고, 지난해보다는 7일 정도 많다. 현재 시베리아에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예상보다 심각한 폭염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서울시가 올해도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아파트를 자치구별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서울시 말고도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부추기는 지자체들이 있어 입주민 관리비 상승과 지구온난화 등이 우려된다. 지자체 담당자들이 각성할 수 있도록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아직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은 경비실이 있다면 올해는 전부 설치할 수 있도록 해서 이 사업 담당자들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게 혼쭐을 내 주는 건 어떨까.

혹시 당신이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면 경비실에 들러 에어컨이 설치돼 있는지 확인해 보자. 혹시 설치돼 있지 않다면 설치를 건의하는 글을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붙여 보자. 참여 의사는 있지만 뭐라고 적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예문을 아래 적어둘 테니 참고하길 바란다.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세요>

‘올여름 역대 최고 폭염이 올 거라고 합니다. 매년 여름이면 밖에서 일하시는 경비 아저씨들이 이 더위를 어떻게 견디실까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줬다는 글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졌었는데 이번에 우리도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비용이 얼마나 들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가정별로 많아야 한 달에 커피 한 잔 정도라고 합니다. 그 정도면 경비 아저씨들이 좀 더 시원하게 우리 아파트를 위해 애써 주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도 계실 수 있지만 같이 한 번 얘기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적어봤습니다. 여백에 자유롭게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비 아저씨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한 명의 소중한 인간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 좀 더 사랑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칼럼을 쓰며 검색해보니 ‘친절하게 대해주니 오히려 경비원들이 무례하게 굴더라’는 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세상 살다보면 잘해주는 사람을 ‘호구’로 보는 경우가 실제로 많긴 하다. 그러나 잘해주면 무례해진다는 이유로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 휴머니즘이 상실되어가는 것 같아 서글프다. 경비원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을’이라 주민이 머슴이나 돌아이라고 조롱해도, 차량 진입 차단봉을 늦게 열었다고 폭행해도, 경비 외 다른 업무에 시달려도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주민 갑질에 시달리다 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최희석씨의 죽음이 찰나의 추모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이용상 뉴미디어팀장 sotong203@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