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성경 속 식물 ‘백합’] 너희 재능이 백합처럼 많다 한들 그것 역시 들풀과 같다

국민일보

[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성경 속 식물 ‘백합’] 너희 재능이 백합처럼 많다 한들 그것 역시 들풀과 같다

입력 2020-07-03 18:39 수정 2020-07-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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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어두운 흙 속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햇빛을 향해 순결하고 하얀 꽃을 피우는 백합꽃은 어느 꽃보다 종교적 상징성이 크다. 백합은 개역한글 성경에 열여섯 차례 언급되며, 공동번역 성경과 새 번역 성경에선 ‘나리꽃’으로 번역됐다. ‘백합(百合)’은 한자어이며, 순우리말로 ‘나리꽃’이다.

많은 사람들이 희고 순결해 보이는 꽃이 백합이고, 붉으면서 야생화처럼 보이는 것이 나리라고 생각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이는 백합의 ‘백’이 흰 백(白)이 아닌 일백 백(百)이란 것을 알면 오해가 풀린다. 땅속의 비늘줄기(알뿌리)를 구성하는 비늘잎이 100조각이 될 정도로 많다는 뜻에서 백합(百合)이라 불린다. 또 세계적으로 100종 이상의 백합이 있다는 것도 이름의 의미를 더한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걷다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백합이 귀하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를 돌보지 않겠느냐’는 비유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눅 12:27)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마 6:28)

백합은 들판에 피어있는 수많은 들꽃 중 하나이다. 들꽃은 하나님이 뿌려주는 비를 맞으며 이슬에 젖고, 햇볕을 받으며 꽃을 피운다. 오직 하나님의 손길로 자생하는 꽃이다. 예수님은 들판의 수많은 들꽃 중의 하나와 같은 우리에게 근심하지 말고 걱정을 내려놓으라고 당부하셨다. 머리 누일 집이 없어도, 부동산 광풍이 불어와도 걱정하지 말라신다.

백합은 들의 풀이다. 인간의 재능이 백합처럼 많은 찬미를 받지만, 그것들 역시 풀과 같다. 풀은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눅 12:28)

김춘수 시인이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노래했듯이 우리는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기꺼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아버지가 되셨다. 우리는 들판의 수많은 꽃들 중에 하나이지만 하나님이 이름을 불러 주는 순간 의미 있는 존재가 됐다. 네덜란드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께 가까이’에서 우리는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창공에서 별 하나하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신다. 그리고 이름에 개체의 성질이 표현돼 있다. 그리고 땅에는 산맥마다 다르고 동물마다 다르며 모든 곤충이 다르고 마찬가지로 땅에서 자라는 채소와 식물마다 다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들 가운데서도 모든 사람이 각기 종류대로 존재한다. 인종마다 종족마다 민족마다 가족마다 그리고 가족 안의 모든 구성원마다 각기 다르다. 자기 자녀를 혼동하는 어머니는 없다. 영적인 세계도 그와 같다. 이 모든 일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다.…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표준이 될 수 없다.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다.…우리의 영적 생명이 참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실상이 그와 같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아브라함 카이퍼의 ‘하나님께 가까이’ 중에서)

산드로 보티첼리의 ‘수태고지’. 백합꽃을 손에 든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의 소식을 알리는 모습이다(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성경에서 백합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비유로도 사용됐다. 호세아는 매일 아침 내리는 이슬을 맞고 “그가 백합화같이 피겠고”(호 14:5)라고 했다. 이사야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백합화같이 즐거워할 것”(사 35:1)이라고 예언했다. 또 백합은 순결과 결백의 상징이며, 성모 마리아의 중요한 속성이다. 백합은 가시덤불 사이에서 피어난 순결의 개념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산드로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수태고지’에서 천사가 손에 백합을 들고 있다. 교회는 부활절이 되면 보통 백합으로 제단을 장식한다.

샤론의 꽃, 예수여

성경에서 백합은 주로 아름다움을 형용적으로 표현할 때 인용됐다.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아 2:1)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연약하고 아름다운 꽃에 비유했다. 또 솔로몬 궁전의 찬란한 모습을 백합에 비유했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왕상 7:19) 이스라엘 나사렛에 있는 수태고지 교회의 지붕은 순결한 마리아를 상징하는 백합 모양이다. 이스라엘의 1셰켈짜리 동전에도 백합 모양이 새겨져 있다.

많이 알려진 찬송가 ‘샤론의 꽃 예수’에서 샤론의 꽃이 어떤 꽃일까? 이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백합 장미 수선화 무궁화라고도 한다. 그러나 ‘샤론’이란 이스라엘 서북부에 있는 갈멜산에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욥바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게 펼쳐진 평원의 이름이다. 샤론 평원의 아름다움은 이사야서에서도 인용됐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사 35:1~2)

‘샤론의 꽃’은 결국 샤론 평원에 핀 아름다운 모든 꽃을 의미한다. 찬송가 ‘샤론의 꽃 예수’의 노랫말처럼 우리 안에 예수님이 꽃으로 피어날 때 세상의 평안이 깃들 것이다.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이 참사랑의 향기로 간 데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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