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상품이 된 인간

국민일보

[가리사니] 상품이 된 인간

전슬기 경제부 기자

입력 2020-07-06 04:06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혁신의 진통을 앓았다. 혁신 서비스로 불렸던 ‘타다’의 불법성에 대해 온 나라가 들끓었다. 결국 서비스는 종료됐고, 기득권과 낡은 규제가 혁신을 좌초시켰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의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분석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타다 논쟁에서 사람들은 선진국의 우버, 리프트, 딜리버루 등을 언급했다. 해외는 비슷한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만 낡은 잣대로 성장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우러러봤던 선진국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흔히 플랫폼 경제를 지지하는 사람은 편리함을 얘기한다. 타다를 끌어 내린 건 변화가 두려운 이기적인 택시업계와 정부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는 건 편리한 서비스 안에 숨어 있는 ‘노동관계’다. 타다 논쟁이 혁신 대 반(反)혁신이 되고 있는데, 잘못된 얘기다. 지지자는 발전된 서비스와 이용자의 후생만 얘기하고, 반대는 그 안의 노동 문제를 말한다. 서로 가리키는 과녁이 다르다. 이런 측면에서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 옥스퍼드대 교수는 책을 통해 “플랫폼 경제의 핵심은 노동이다”고 강조한다.

타다, 우버 등은 중개자 역할만 할 뿐 직접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은 각자 사장님이다. 자영업자는 특정 시간·장소에 구속당하지 않으며, 상사 지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업체는 이들을 근로자로 대한다. 결국 업체는 자영업자라 법으로 보장하는 최저임금, 휴식 보장, 각종 수당, 사회 보험 등을 챙겨주지 않는다. 일을 시킬 땐 근로자처럼 지휘나 감독을 한다. 일을 시킬 때는 ‘근로자’, 처우를 보장해줘야 할 땐 ‘사장님’이다.

이 모순이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업체들은 모순으로 노동 비용을 절감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제는 노동이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임금, 쉴 권리 등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연관돼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떠넘긴 사회적 비용은 플랫폼 노동자와 소비자, 납세자 그리고 우리 경제 전반으로까지 전가된다. 전문가들이 타다, 우버 등에 마땅히 지불해야 할 노동 비용은 책임진 뒤 혁신을 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플랫폼 기업의 서비스는 새로운 것일지 모르지만 그 안의 노동관계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기업들은 꾸준히 자영업자와 근로자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노동 비용을 절감하려고 시도했다. 우리나라에도 ‘특수고용형태종사자’가 있었다. 이들의 노동관계도 결코 혁신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프라슬 교수는 “일반직 노동자를 조정하는 강력한 중개자와 그에 따른 저임금, 불안정 노동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며 “인간을 서비스로 취급하지 않고도 플랫폼 혁신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도 지난 1일 타다 드라이버를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나왔다. 혁신의 산실이라는 실리콘 밸리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올해부터 ‘AB5법’을 시행한다. 사용자가 통제하지 않고 독립적 사업을 보장하고 있다는 요건을 입증하지 못하면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각종 규제를 지키면 어떻게 새로운 발상을 하느냐고 반문한다. 초기 비용 절감에 특혜를 줘야 신산업 육성이 가능하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왜 오랜 기간 인간이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을 막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묻고 싶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이것이 혁신하지 말라는 말과 동급이 아니다. 지킬 건 지키고 혁신을 하라는 얘기다.

전슬기 경제부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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