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용서할까? 말까?

국민일보

[청사초롱] 용서할까? 말까?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 2020-07-08 04:04

‘서로 용서하라. 이 세상에서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용서다.’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톨스토이가 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의 말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용서하지 않으면 본인의 삶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기보다는) 마음에 품지 않고 잊어버리려고 애쓴다. 하지만 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기억이 새록새록 선명해지는 것을 보면 잊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럼 가까운 사람을 용서하고 잊는 것은 쉬운 일일까? 그렇지 않다. 더 어려운 일이다. 매일 보는 사람도 아니고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똥 밟은 셈치고 잊어버리겠지만, 매일 보는 사람은 그러기 쉽지 않다. 볼 때마다 잊으려던 일이 생각날 뿐만 아니라 (친했던 만큼) 느껴지는 배신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사람을 계속 봐야 하는 현실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는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부부의 세계는 어떨까. 의도적이든 아니든 결혼의 울타리 안에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을 하며 상처와 아픔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우리는 서로를 용서할 수밖에 없다. 용서를 안 하면 어떡하겠는가. 같이 살려면 억지로라도 용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마다 용서하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쉬운 용서’를 택하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까칠한 용서’를 택한다. ‘쉬운 용서’는 말 그대로 (화는 나지만) 없던 이해심까지 총동원해 통 크게 눈 한번 질끔 감아주는 것이다. 신랄한 비판과 함께 치사하게 복수하거나 회피전략을 구사해 (단기적일망정) 관계를 끊어버리는 ‘까칠한 용서’와는 달리 ‘쉬운 용서’는 이해와 포용을 선택한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조건 없는 용서가 감동과 울림을 전달해 상대방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주장했던 것처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쉬운 용서’는 부부의 세계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좋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조건 없는 용서를 해주면 다시는 그런 언행을 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 의견에 부정적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선을 선으로 갚지 못하는 듯하다. 화를 동반한 직접적인 비판과 정서적 분리(고립), 그리고 거절은 가해자의 나쁜 언행을 향후에 크게 낮추지만, 그러한 것들이 동반되지 않는 용서는 나쁜 언행을 반복하게 한다는 연구가 즐비하다. 더 나아가서 ‘쉬운 용서’를 경험한 자는 배우자에게 더욱더 공격적이고 무례하며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일삼는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쉬운 용서’는 선의를 악으로 갚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나쁜 언행에 대한 적절한 반응(화, 비판, 거절, 분리 등)이 없을 때 가해자는 본인의 언행이 얼마나 나쁜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대신 자의적으로 합리화한다), 두 번째 정확하게 인식했다 하더라도 적절한 반응이 없으면 다음에 다시 그런 언행을 반복해도 용서가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쉬운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잘못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과 용서는 구분돼야 한다. 관계가 더 불편해질 것 같은 우려와 선의로 ‘쉬운 용서’를 택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더 아픈 화살로 되돌아올 것이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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