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풍경화] 나는 당신의 시원한 그늘

국민일보

[편의점 풍경화] 나는 당신의 시원한 그늘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입력 2020-07-11 04:04

어느 때, 도심 골목 한 귀퉁이 편의점 문 앞에, 혹은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초록으로 한들거리는 도롯가 편의점 창가에, 더러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그림처럼 자리한 편의점 공터에, 동그랗게 몸을 펼치고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파랑, 노랑, 빨강, 초록, 보라…. 편의점마다 색깔은 다르지만 같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올해도 당신과 여름을 마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편의점 파라솔입니다. 여기 오도카니 앉아 세상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아침엔 동네 할아버지들께서 음료수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인생 만담을 나누다 가셨고요, 뒤이어 유모차 밀고 편의점 앞에서 만난 엄마들의 흥겨운 수다에 더불어 즐거웠어요. 점심 무렵 다정히 걷던 젊은 부부가 제가 만든 그늘에 앉아 봉봉이란 태명을 가진 뱃속 아기에게 샛바람의 청량함을 소곤소곤 알려주는 이야기에 살며시 귀 기울이다, 늘 그렇듯 오후가 되니 학교를 파한 아이들이 왁자지껄 달려와 제가끔 컵라면 핫도그 먹으며 한바탕 떠드는 소리에 살짝 정신이 없기도 했지요. 강아지 뽀삐랑 매일 산책하러 나오는 박점례 할머니는 오늘도 변함없이 길게 목줄을 늘이며 석양 무렵 찾아오셨답니다.

상점들이 하나둘 간판을 밝히고, 형광등 불빛이 눈부신 직선으로 거리를 내달리고, 끔뻑끔뻑 주황색 가로등마저 켜지며 여름 하늘이 새까맣게 반짝이는 시간이 되면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분주해집니다. 그즈음 저의 인기도 절정에 달아올라요. 만원에 4개짜리 맥주를 한 묶음 펼쳐놓고 과자 한 봉지 안주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동네 아저씨들의 토론을 참관하기도 하고요, 지친 하루를 뒤로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의자에 기대앉아 드링크 음료 홀짝이는 청년을 볼 때면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고픈 애잔한 마음에 눈시울이 남몰래 시큰해집니다. 취업, 이번엔 꼭 될 거예요! 자정 지나 캔커피 하나 손에 쥐고 테이블에 머물며 휴대전화만 연신 만지작거리는 대리기사 아저씨, 오늘 밤엔 부디 ‘연속 콜’이 걸려오기를.

저는 편의점 파라솔입니다. 우리 세 가지를 약속해요. 하나, 맛있게 음식을 드시고 난 뒤에는 테이블을 깨끗이 정리하고 돌아가기.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우리가 되기로 해요. 둘, 지나치게 시끄럽게 떠들지 않기. 나에게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다른 누구에게는 소음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기로 해요. 그리고 셋, 다음 사람을 위해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 혼자만 누리려는 사랑은 저에게도 은근한 부담이랍니다.

편의점의 여름은 파라솔의 계절. 바람이 세게 불거나 소낙비가 내리면 잠시 몸을 접고 처마 밑에 홀로 외로울 때도 있지만, 맑은 날 다시 찾을 당신을 떠올립니다. 이 계절 지나면 먼지 쌓인 창고에 들어가 또 이듬해를 기약할 운명이지만, 지난여름 싱그러운 기억만 떠올리며 저는 언제나 행복할 거예요. 나는 당신의 시원한 그늘. 내 몸을 한껏 펼쳐 그대 머리 위에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을 가려줍니다. 당신은 누구의 시원한 그늘인가요?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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