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내 인생의 ‘갈대 상자’

국민일보

[이지현의 티 테이블] 내 인생의 ‘갈대 상자’

입력 2020-07-11 04:01

그녀의 이름은 요게벳. ‘여호와는 영광이시다’란 뜻이다. 그 이름은 성경에 딱 두 번 나온다(출 6:20, 민 26:59). 레위의 딸이자 아므람의 아내이며 ‘모세의 어머니’란 기록이다. 태어난 지 석 달 된 아기를 갈대 상자에 넣어 강가에 떠나보내는 대목에서도 요게벳의 이름은 ‘레위 여자’ ‘그 여자’로만 나온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 2:2~3)

그때 요게벳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성경에 그녀의 감정을 나타내는 내용은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 작은 갈대 상자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는 손끝이 떨렸을 것이다. 갈대 상자 속에 웃고 있는 아기와 눈을 맞추었을 땐 숨조차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히브리인 남자 아기는 태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 속에서, 그녀가 선택한 행동은 삶을 송두리째 주님께 맡기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무모했다. 물살에 갈대 상자가 뒤집힐 수도, 악어가 삼킬지도 모르는 예측 불허의 강물 위였다.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갈대 상자는 절망의 상자였으나, 결국 그녀의 이름처럼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냈다.

갈대 상자의 히브리 원어 ‘테바’는 본래 노아의 홍수 사건에 등장하는 ‘방주’를 의미한다. 커다란 방주도, 작은 갈대 상자도 모두 동력이 없다. 주어지는 운명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똑같이 ‘테바’인 셈이다. 요게벳은 자신의 능력으로 살릴 수 없는 아기를 보내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은 갈대 상자를 바로의 딸에게 인도하셨다. 갈대 상자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뤄질 때까지 절대로 뒤집히지 않았다. 다만 죽을 것 같고, 뒤집힐 것 같았을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물살을 만난다. 특히 입시, 취업, 결혼, 은퇴 후 삶에 대한 걱정과 염려, 자녀에 대한 문제로 하루하루가 괴로울 때도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내 삶의 참 주인인 하나님께 맡긴 요게벳을 닮아야겠다. 내 안의 불안과 염려, 걱정과 근심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도 내 인생의 ‘갈대 상자’에 담아 내려놓자. 갈대 상자를 강물에 내려놓은 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자녀 문제로 걱정하고 있다면 요게벳을 떠올리자. 요게벳이 현실에 굴하지 않고 갈대 상자를 만들어 물이 들어오지 않게 역청과 진을 바르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말씀으로 자녀를 무장시키는 것. 그래서 흔들림 속에서도 이겨낼 힘을 갖게 돕는 것이다. 모두가 선장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산 위의 장송이 되지 못한다면 계곡의 나무가 될 수 있다. 또 누구나 사랑하는 아름드리 나무가 될 수 없다면 들판의 작은 꽃이 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요게벳의 노래’ 가사처럼 삶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염평안, 최에스더의 ‘요게벳의 노래’ 중에서)

‘요게벳의 노래’를 작사 작곡한 염평안 전도사는 아이가 셋이다. 둘째와 셋째는 쌍둥이 자매인데 체중 1.5㎏ 미만의 미숙아로 태어났다. 폐가 덜 발달해 무호흡증을 일으키곤 했다. 그러면서도 아무 노력 없이 숨 쉬고 자라고, 살아가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걸 느꼈다. ‘부모로서 아이들의 참 보호자, 주관자가 될 수 없구나’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 마음이 요게벳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란 질문을 하게 됐고 요게벳의 노래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나만의 갈대 상자를 어떻게 물가에 내려놓을 수 있을까.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강물 앞에 품고 있던 갈대 상자를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파산당한 사람처럼 스스로 설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면,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을 비워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인 되게 한다면, 자신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모든 것을 기대하게 된다고 고백한다면 보이지 않는 길에 갈대 상자를 담대하게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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