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목이 메는, 주먹밥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목이 메는, 주먹밥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0-07-10 04:05

“선생님, 이거요.” 나가려던 아이는 문득 생각났는지, 엉거주춤하게 가방 안에서 버스럭거리는 비닐봉지를 꺼냈다. 전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아 어머니 혼자 벌어 아이들을 챙기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을 텐데, 어쩌다 일을 쉬는 날이면 엄마와 아이가 종종 간식거리를 들고 오는 집이었다. 평소엔 ‘김영란법’을 핑계로 아이와 함께 드시라며 돌려보내곤 했는데, 오늘은 아이 편에 집에서 만들었다며 주먹밥 두 덩어리를 보낸 것이다.

그날따라 진료가 계속 밀려서 쉬지 않고 진료를 봤다. 오전 일정을 끝내고 나니 오후 진료 시작 시간까지 채 몇 분 남지 않아 원내 식당조차 다녀올 여유가 없었다. 그제야 서랍 안에 넣어두었던 주먹밥이 생각나 열어보니, 김이 서린 비닐 안의 주먹밥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처음엔 미처 못 봤는데 꺼내면서 보니 친정에서 농사로 거둔 쌀로 지은 밥에 직접 짠 참기름을 넣어 만들었다는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꽁꽁 싸매진 봉지를 풀자 짭쪼름하고도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남을 고소한 향이 순식간에 퍼져 잊고 있던 허기가 밀려들었다. 허겁지겁 몇 입 만에 두 덩이 중 하나가 사라졌다. 어린 시절 시골 시장에서 맛봤던 느낌 그대로인 강한 참기름 향과 함께 깨가 콕콕 박힌 고슬한 밥을 삼켜 넘길 때마다 그간의 장면들이 한 장면씩 떠올랐다.

눈맞춤도 제대로 되지 않던 첫 진료, 그동안 말을 못했지만 사실은 엄마가 심하게 맞았다며 아이가 펑펑 울던 날, 결국 응급실에 실려 온 아이를 보던 순간. 이혼에 성공했다며 기뻐했지만,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사투를 벌이느라 진심으로 즐거운 순간을 찾기 어려웠던 날들. 그렇게 빡빡한 날들 중에 학교에서 받은 상장과 사진들을 보여주며 자랑하던 아이와 엄마의 표정. 그 모든 장면들이 밥알 하나하나,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섞여 떠올랐다. 이상하게 목이 메어 연신 물을 들이켜도 마지막 몇 입은 끝내 넘기기가 어려웠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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