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국회부의장

국민일보

[한마당] 국회부의장

이흥우 논설위원

입력 2020-07-10 04:02

미국에서 2018년 개봉한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바이스(Vice)’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바이스엔 악(惡)의 뜻도, 부(副)의 의미도 있다. 이 영화에 “부통령은 허수아비예요. 앉아서 대통령이 죽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하는 일이 없어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미국 부통령이 얼마나 존재감이 없으면 작가가 이런 대사를 썼을까 싶다. 사실 워싱턴, 제퍼슨, 링컨, 루스벨트 등 역대 미 대통령의 이름은 자주 접하지만 부통령의 경우 대선에 뛰어든 극소수를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이가 없다. 명색이 대통령 유고 시 권력 승계 1순위인데 부통령의 평소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부회장, 부사장 등 ‘부’자가 앞에 붙는 직책은 형식상 서열은 높은데 결재 과정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접은 후하게 받으면서도 책임질 일이 거의 없는 ‘부○○’이야말로 꽃보직 중의 꽃보직이라고 말하는 이도 없지 않다. 미래통합당이 의원총회에서 야당 몫 국회부의장을 맡지 않기로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한 국회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통합당에 양보하지 않는 한 원 구성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의전상 국회부의장이 분명 법사위원장에 비해 서열이 높은데 법사위원장에 집착하는 통합당의 옹고집은 소 힘줄보다 세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부의장의 실질적 권한이 법사위원장에 미치지 못해서다. 미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이 된다는 기대감이라도 있지만 우리나라 국회부의장은 그런 기대감도 가질 수 없다. 국회법상 부의장의 직무는 국회의장이 사고가 있을 때 그 직무를 대리하는 데 국한된다. 폼만 나지 권한은 없는 ‘부○○’의 전형이다. 야당에 국회부의장직을 할애하는 건 관례이지 의무는 아니다. 부의장은 국회의장과 마찬가지로 무기명 투표에 의한 재적의원 과반 득표로 선출한다. 더 머뭇거리다간 당 살림에 적잖은 보탬이 되는 꽃보직 한 자리를 잃을 수 있다.

이흥우 논설위원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