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1) “주와 함께한 ‘팔 없는 36년의 삶’… 사고 전보다 행복”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석창우 (1) “주와 함께한 ‘팔 없는 36년의 삶’… 사고 전보다 행복”

전기 점검 중 고압 전류에 감전, 절망한 순간 모든 걸 예비해오신 하나님… 붓 들게 하셔

입력 2020-07-1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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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우 화백이 지난달 14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붓을 끼운 오른쪽 의수를 들어보이고 있다. 뒤편으로 그가 직접 쓴 요한3서 1장 2절 말씀과 경륜 선수 그림이 보인다. 강민석 선임기자

어느덧 두 팔로 살아온 시간보다 의수에 의지해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아졌다. 2015년 하나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의수에 붓을 끼운 채 성경 필사를 시작했다. 난 그때부터 늘 사람들에게 말한다. “손이 있어 내 맘대로 살아온 30년보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온 손 없는 36년의 삶이 더 즐겁고 행복했다”고.

1984년 10월 29일을 결코 잊지 못한다. 하나님께선 당시 29살로 전기관리자였던 내 두 팔을 모두 가져가셨다. 당시 일터였던 공장 변전실에서 내부 전기설비 점검을 하다 2만 2900V 고압 전류에 감전됐다. 이 사고로 두 팔과 왼쪽 발가락 두 개를 잃었다. 36년이 지난 지금도 잘린 두 팔 언저리엔 찌릿한 환상통이 찾아온다. 하지만 주님께선 지난 삶 모든 순간 나와 함께 계시며 내 고통과 함께하셨다. 역설적으로 두 팔이 온전했을 땐 상상도 못 했던 화가의 길을, 두 팔을 잃은 내게 넌지시 열어주시더니 지금까지 이끌어 주셨다.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하나님은 오히려 내 모든 걸 예비하시고 계셨다.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예비하심의 연속이었다. 평범한 전기기술자로 살았을지 모를 내 인생에 찾아오신 그분은 사고로 잃은 내 두 팔에 붓을 들게 하셨다. 2012년 런던올림픽 팀하우스코리아에서의 퍼모먼스를 시작으로 2014년 소치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거쳐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 폐막식 퍼포먼스까지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는 무대에 나를 기어이 세우시더니 당신의 놀라운 사랑과 위대함을 전 세계에 알리셨다.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부족한 날 세우고 그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학창시절 처음 만난 하나님은 내가 그를 잘 모를 때도 묵묵히 옆에서 나의 길을 예비해오고 계셨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선 사고 전과 후 학교와 병원에서 만난 내 주변 사람들을 통해 계속 자신의 말씀과 뜻을 내게 전하시고자 하셨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온 사고 이후의 삶이 더 즐겁고 행복했노라고.

내겐 이름 앞에 붙는 호(號)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나중에 설명할 금곡(金曲)이고, 다른 하나는 유빙(流氷)이다. 빙산이 바다 위에서 유유자적하게 놀다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닷물과 동화되는 삶을 살겠다는 뜻을 담았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흘러온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이다.



약력=1955년 5월 22일 경북 상주 출생. 명지대 전기공학과 졸업.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한국서예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회원. ‘수묵 크로키’의 대가로 초·중 고 교과서 10곳에 작품 수록.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