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이낙연은 누구의 말을 들을까

국민일보

[세상만사] 이낙연은 누구의 말을 들을까

김나래 정치부 차장

입력 2020-07-10 04:02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력한 차기 당 대표 후보다. 동시에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대선 주자다. 이 정도면 ‘대세론’이 휩쓸 법도 하건만, 생각보다 민주당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분하다. 한 의원은 “이 정도 대선 주자면 (정치인들의) 마음을 뛰게 할 법도 한데, 아직 그분의 메시지가 내 가슴을 뜨겁게 하질 않는다”고 했다.

이 의원은 정제된 언어로 간결한 메시지를 내놓는다. 언론인 출신으로 대변인 등을 거치며 ‘정치의 품격’을 추구해온 정치인답다. 신문기자 시절부터 몸에 밴, 꼼꼼한 사실 확인과 오탈자 없는 문장 사용이 유명하다.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완벽함을 추구해온 시간이 오늘의 이낙연을 만들었다. 특히 총리로서 대정부질문을 통해 보여준 모습에서 국민은 안정감과 신뢰를 느꼈다. 의원, 전남도지사에 이어 총리까지 거치며 쌓은 경험이 많은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자기 생각이 강하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그런 스타일과 언어에 어떤 이들은 매력이 없다고도 한다.

그랬던 그가 조금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 1일 논란이 됐던 사건이다. 그날 오전 7시30분 시작한 행사에서 그는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말하던 중 한국의 산후조리 시스템을 언급했다.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감동적인 순간은 소녀가 엄마로 변하는 순간인데 남자들은 그걸 경험하지 못해 나이 먹어도 철이 안 든다’는 문제의 발언이 그때 나왔다. 3시간쯤 지나자 비판 기사가 나왔다. 처음엔 난임이나 불임, 비혼 여성을 배려하지 않은 발언으로, 그의 성인지 감수성을 지적하는 기사였다. 오후가 되자 육아에 적극 가담하는 남성의 역할을 무시한 발언이란 비판이 남성들 편에서 제기됐다. 과거에도 여러 번 했던 발언인데 논란이 커지자 이 의원은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비판을 위한 비판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일부 의원은 사과까지 할 일은 아니라며 이 의원을 두둔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의원은 이날 보좌진, 특히 30대 비서들의 의견을 다 묻고 들었다. 30대 비서들은 하나같이 발언이 부적절해 사과할 일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 세대의 목소리를 들려줬던 것이다. 결국 논란이 일어난 지 8시간 만인 오후 6시23분, 그는 페이스북에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저만의 경험으로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지 경계하며, 더 넓게 우리 사회를 보겠다”고 말했다. 악재처럼 보였던 돌발 상황은 그의 사과로 마무리됐다. 평소 사과나 발언 정정에 신중한 스타일이던 그였기에 비서진 중에선 자기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수용하는 모습에 놀랐다는 후문이다.

변화 속도가 유난히 빠른 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세대 간, 젠더 간 입장 차가 커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문제의 당사자들, 특히 그중에서도 그 문제로 가장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맞춰져 있어야 한다. 경험하지 못해 직감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적어도 당사자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기준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유력 정치인일수록 더욱 그렇다. 힘을 가진 그의 행동은 곧 다른 이들에게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또 다른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의원은 어떤 말을 들려줄까. 총리 때와 달라진 상황에서 ‘이낙연의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서 닿고 울림을 주려면 지금과는 퍽 많이 달라져야 할 듯하다. 어쩌면 이낙연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에서 길어 올린 말보다, 다양한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와 외침을 곱씹고 깊이 새겨낸 말이어야 할 것이다. 이 의원이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떤 말을 들려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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