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라꽃, 무궁화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나라꽃, 무궁화

오병훈 수필가

입력 2020-07-13 04:02

해마다 보는 꽃이지만 이번 여름 무궁화는 어쩐지 더 귀한 것 같다. 그만큼 무궁화가 우리 곁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해서일까. 무궁화는 나라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생식물은 아니다. 조선시대 박민웅의 ‘창암집(滄巖集)’에 따르면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오면서 무궁화(槿花) 종자를 가지고 와 이 땅에 심었다’고 했다. 무궁화가 전래된 초기의 기록.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당에 보낸 국서에는 계림을 근화향(槿花鄕)이라 했으니 무궁화의 재배 역사는 길다. 우리 겨레와 역사를 같이해 온 애틋한 꽃. 무궁화는 단 하루만 꽃이 피기 때문에 갓 세수를 한 미인처럼 언제나 새로운 얼굴로 우리를 반긴다. 한 그루의 무궁화나무가 뜰에 있다면 아침마다 꽃을 통해 화사한 빛깔과 향기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무궁화만큼 큰 꽃이 피는 나무도 드물다. 봄철의 목련이나 모란이 있긴 하지만 개화기간이 너무 짧다. 덧없이 피었다가 우리의 마음에 아쉬움만 남기고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무궁화는 여름이 다 가고 곡식이 여물 때까지 끊임없이 피고 진다. 은근과 끈기는 겨레의 심성을 닮았다고 하지 않던가.

일제는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의 무궁화를 모조리 뽑아냈다. 그래도 한서(翰西) 남궁억 선생은 무궁화선양운동을 펼치고 무궁화나무 심기를 계속했다. 나라꽃이야말로 겨레의 얼굴이며 혼. 그렇게 수난을 견딘 무궁화에 오늘의 우리는 걸맞은 대우를 하고 있는가. 가지를 죄다 잘라 장작개비를 만들어 꽃이 적게 피도록 유도하고 있다. 줄기를 잘라서 웃자란 가지가 들쭉날쭉하면 다시 둥근 수형을 만들겠다고 또 자른다. 나무는 체내에 저장한 양분 부족으로 결국 말라죽고 만다. 이것이 무궁화를 가꾸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는 나뭇가지를 잘라 키를 낮추고 동그랗게 만들겠다는 왜식 전정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궁화는 가만히 두면 저절로 동그란 수형이 된다. 가지 끝에서 수백 수천 송이의 무궁화가 피는 나무로 가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병훈 수필가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