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이게 민주주의인가

국민일보

[국민논단] 이게 민주주의인가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

입력 2020-07-13 04:06

지난주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기세가 아주 좋았다. 6위였던 순위가 단숨에 4위로 올랐다. 2위도 곧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런데 허삼영 삼성 감독은 “잘 나갈 때일수록 자만을 경계해야 한다. 페이스는 언제라도 떨어질 수 있다”며 자세를 낮추었다.

사람 사는 것이 어디나 다 비슷하다. 성경은 ‘목이 곧은 자’, 곧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은 ‘패망을 피하지 못하리라’고 경고한다. 정치도 그렇다. 오만은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고대 아테네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독일 국민은 1934년 국민투표에서 88%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히틀러를 총통 자리에 앉혔다. 민주주의는 흠이 없는 완전체가 아니다. 겸손을 모르면 괴물이 되고 만다. 민주주의 최선진국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죽음과 종말을 다룬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관용과 절제의 관행을 파괴하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지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관행’을 잇따라 파괴하고 있는데 여간 불안하지 않다. ‘민주주의의 자살’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원 구성을 놓고 야당과 다투더니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차지했다. 설마 그렇게 할까 했는데 보란 듯이 해치웠다. 지난 22년 동안 관행으로 야당이 맡았던 법사위원장도 기어이 빼앗았다. 그게 ‘국민의 뜻’이라고 했다(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18대 국회에서 과반을 차지한 새누리당이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갖겠다고 하자 당시 민주당 대변인은 ‘의회 독재를 꿈꾸는 것인가. 과거 독재정권이 하던 짓’이라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때 그 대변인은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고 있다.

관행이라고 절대불변일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래 지켜온 관례를 바꿀 때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저 당파적 이익에 눈이 어두워 현상을 변경하려 든다면 욕을 먹어 마땅하다. 완장을 차보면 그 사람의 실력이 나온다. 다수당이 된 민주당 정권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다시 공론화하는 것이었다. 권력을 잡았다고 자기네 ‘숙원사업’을 최우선 순위로 올린다는 것은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편성된 3차 추가경정예산이 졸속, 부실로 통과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 와중에 민주당은 13개 지역 민원사업 3571억원을 끼워 넣었다가 들통이 나자 곧바로 전액 삭감했다. 이러니 문재인표 ‘관행 깨기’가 ‘독재 고속도로’라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안치환은 진보진영의 대표적 가객(歌客)이다. 그런 그가 오죽하면 민주당 사람들을 향해 ‘다 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 꺼져라 기회주의자여’라고 노래했을까.

현 집권세력은 터무니없는 일을 하면서도 너무나 당당하다. 뻔뻔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그러나 그들도 자신이 잘해서 지지율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계산 때문일까? 어느 평자가 말했듯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전술적 유불리만 따지는 습성 때문일까? 이런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내세워도 되는 것일까?

자기들이 하는 일이 절대 옳다는 확신 때문일까? 그래서 목적이 정당하니 수단은 문제가 안 된다고 자기최면을 거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에서부터 출발한다. 나와 다르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주의자의 필수 덕목이다. 정치를 ‘적과 아군’이라는 유치한 2분법으로 접근하면 보복의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이라고 문재인 정권의 적폐를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없을까.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다수파가 압도적인 힘을 과신하면 더이상 ‘이성적으로 무장’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게 된다고 했다. 권력 집단이 이성을 상실하면 공공연히 사악한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고 예단했다. 돼지가 식탐이 많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위장의 70%만 채운다. 힘을 쓸 수 있지만 쓰지 않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다. 오만은 무서운 것이다. ‘뜨거운 얼음’처럼 말이 안 되는 조합을 형용모순이라고 한다. ‘민주독재’라는 형용모순이 한국사회에 어른거리고 있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