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살아내야 한다

국민일보

[뉴스룸에서] 살아내야 한다

강주화 산업부 차장

입력 2020-07-13 04:05

충격적인 죽음이다. 지난 9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실종이 보도되고 다음 날 그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박 시장은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00만명이 사는 한국 수도 서울의 수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가 사라지기 전날 전직 비서는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고 한다.

그가 죽음을 택한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선 고소 사건과 연관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 시장이 떠난 자리에는 연민과 배신, 애도와 경멸이 교차하고 있다. 어떤 이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를 두둔하고, 다른 이는 “국민에게 큰 절망감을 안겼다”고 비난하고 있다. 박 시장은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고 문민정부 이후에는 참여연대를 창립, 열성적인 시민운동가로 일했다. 다양한 사회운동을 하다 정치에 입문했고 최초로 3선 서울시장이 된 인물이었다. 그는 대표적인 ‘엘리트’ 사회운동가였고 정치인이었다.

만약 고소를 당한 것이 이유가 됐다면 그를 추동한 것은 위기감이었을 것이다. 사회 정의와 공익을 추구한 자기 삶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가 ‘자기 파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그를 몰고 간 게 아닌가 싶다. 어찌 됐든 무책임한 행동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으로 타격받을 이미지나 명예가 자기 생명보다 큰 것인가. 결코 클 수 없다.

이는 생명의 가치보다 성취나 성공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공개된 ‘2020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사람의 수는 2018년 26.6명으로 전년보다 2.3명 많아졌다. 동기는 다양하다. 10∼30세는 정신적 고통, 31∼60세는 경제적 빈곤, 61세 이상은 건강 문제 때문에 각각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2016년 기준 24.6명)가 가장 높다. OECD 평균(11.5명)의 2.1배다. 매우 다양한 원인 분석이 나오지만 많은 전문가는 경쟁적 사회 분위기를 한 가지 원인으로 지목한다. 존재 자체보다 성취를 강조하기 때문에 끝없이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불행감과 우울함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한 상담사에게 들은 얘기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 중에는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 자해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상담사는 청소년에게 “모두가 1등을 할 수도 없고 네가 항상 1등일 수도 없다. 그냥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 훌륭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대부분 이렇게 반응한단다. “아무도 ‘견디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인간의 존엄은 완벽한 삶을 사는 데 있지 않다.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 데 있지도 않다. 인간으로서 수많은 과오를 범하지만 그 잘못 앞에 겸손하고 용서를 구하고 살아나가는 데 있다. 수치 속에서도 사는 것이 인간의 존엄이다. 박 시장의 죽음은 이 존엄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서글프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삶은 고통과 도전의 연속이다.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평범한 자기 부모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는 이유도 비슷하다. 때로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위대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매일매일 그렇게 해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애써온 고인이 왜 자기 삶을 위해서는 그러지 못했는지 참 안타깝다.

강주화 산업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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