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상처만 남은 檢

국민일보

“윤석열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상처만 남은 檢

지휘권 상실에 ‘버팀목’ 역할 흔들… 조직은 서로 편파수사 제기 얼룩

입력 2020-07-13 00:07
사진=권현구 기자

“수용, 불수용 문제가 아니었다. 검찰총장은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둘러싼 갈등 양상이 윤석열(사진) 검찰총장의 “지휘권은 이미 상실됐다”는 선언으로 마무리된 이후 검찰에서는 “애초부터 총장에게 선택지가 없었다”는 복기(復碁)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자신의 책무를 일선 수사팀의 외압에 대한 방패막이로 여겼던 윤 총장에게 수사팀과 법무부가 모두 자신의 지휘권 박탈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례 없이 총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받은 수사팀으로서도 납득할 만한 수사결과를 보여야 하는 일이 무거운 과제로 남게 됐다.

1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 총장은 지난 9일 아침까지도 전직 검찰총장 등 원로들의 자문을 얻으며 끝까지 고심했다. 하지만 그날 “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이미 지휘권이 상실됐고, 결과적으로 서울중앙지검이 자체 수사를 하게 됐다”는 입장을 밝힌 후 사적으로도 말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상실됐다”는 윤 총장의 선언은 법무부와 대검 간의 실무진 협상과 이전까지의 강대강 대치 국면 등을 고려하면 다소 무력한 결론이었다. 다만 검찰 간부들은 이 표현에 결국 이번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수사팀과 법무부의 태도를 깊이 고려한 속뜻이 있다고 말한다. 앞서 수사팀은 추 장관에게 윤 총장의 사건 지휘 배제를 공개 건의했고, 추 장관은 윤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했다. 이를 두고 한 간부는 “총장이 무효라 주장하려 해도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일이었다”고 했다.

윤 총장은 1년 전 인사청문회 당시 “총장은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정당한 수사를 지키는 게 본업”이라고 했다. 수사팀이 검찰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아 괴로운 상황이었다면 버팀목이 돼줄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의 상황이 된 것이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일은 수사팀과 법무부가 한목소리였던 데에 가깝다”고 했다. 총장이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법무부는 물론 후배 검사인 수사팀의 뜻과도 반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 내내 대검 주변에서는 윤 총장의 장고에 대해 “후배를 위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직을 걸 사람인데, 왜 고심을 하겠느냐”는 말이 나왔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을 향해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팀장 당시의 심정이 이번 수사팀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고 깨달았느냐고 훈계도 했다.

물론 정권 차원의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두 수사팀이 단선적으로 비교되진 않는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의 경우 보복성 징계를 받기도 했다. 반면 이번 수사팀에 그런 징계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선 “이번 수사팀에 대해 징계권자인 장관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먼저 선언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만 이번 일은 윤 총장은 물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도 조직 내에서 편파수사 의혹이 제기되는 등 가볍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윤 총장이 먼저 “티끌만큼도 공정성 시비가 없게 하겠다”고 지휘권 상실 상태를 강조하면서 수사팀 역시 책임 있는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할 상황이 됐다. 검찰 고위 간부들 사이에선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가 창피하다” “조직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많이 돌고 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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