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학교가 제구실 못했어도 학력저하 없었다니

국민일보

[가리사니] 학교가 제구실 못했어도 학력저하 없었다니

이도경 사회부 차장

입력 2020-07-13 04:01

공교육이 사교육의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이보다 명확한 증거가 또 있었을까. 개별 학교의 지엽적인 사례들이나 가파르게 치솟는 사교육비 지표 같은 정황 증거는 여럿 있었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의 결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3 재학생과 N수생의 격차는 예년과 다르지 않다.” 평가원이 지난달 18일 치러진 2021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를 채점하고 내놓은 결론이다. 조금 과장을 섞어 의역하면 코로나19 때문에 장기간 학교가 제구실을 못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학력 저하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평가원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예년과 다를 게 없으니 올해 수능을 쉽게 출제할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고3 학생들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재수생보다 불리하므로 수능을 좀 쉽게 내달라고 요구했던 시·도교육감들만 머쓱해졌다.

올해 고3은 무슨 일을 겪고 있는가.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3월 2일부터 등교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고3 새 학기를 시작했어야 했다. 개학일 발표와 연기가 반복되는 혼란 속에서 4월 9일 원격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경황 없이 닥친 초유의 교육 실험이었다. 수시로 먹통이 되는 원격수업과 지역·학교별 수업 격차까지 원격수업 초반에 빚어졌던 혼란상은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등교는 석 달 가까이 늦은 5월 20일 이뤄졌다. 학교들은 수행평가부터 중간고사까지 그동안 미뤄왔던 시험을 벼락치기로 밀어붙였다. 수업이든 평가든 온전히 이뤄졌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등교하고 30일이 흐른 지난달 18일 이번 모의평가가 시행됐다. 3월 2일부터 모의평가까지 세보면 109일이다. 백번 양보해 ‘등교=학사 운영 정상화’라고 쳐도 학교에서 공부한 기간이 예년의 30%를 밑돈다.

‘수능 리허설’로 불리는 평가원 모의평가가 이런 상황에서 치러졌지만 학생들은 무탈했단다. 등교 개학이 이뤄질 당시 인터뷰했던 고3 학생들 말이 떠오른다. 등교 중지 기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학교 방해 없이 학원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수능에 몰입하고 싶다고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중·고교 11년을 마친 학생들의 냉정한 평가다. 공교육을 향한 조롱에도 딱히 방어논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제도든 사람이든 사라졌을 때 그 진가가 확인되는 법이니까.

최근 인터뷰했던 초등학교 교사가 분통을 터뜨린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는 학년마다 요일을 정해놓고 등교한다. 월요일 1학년, 화요일 2학년 등교시키는 방식이다. 한 학부모가 학교 측에 “우리 아이 학년은 매주 화요일 등교인데 월요일로 바꿔주면 안 될까요”란 민원을 넣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학원 일정이 화요일에 몰려 있어 아이가 너무 피곤해 한다는 이유였다.

학교는 코로나19 때문에 보내기 꺼려져 가정학습 기간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아이가 뒤처질까봐 학원에는 보내야겠다는 학부모들. 교사들 수다 자리에선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은 학교를 1주일에 한 번 나가거나 격주로 가는 곳, 학원은 매일 가야 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오고 간다. 역대 최대치를 매년 갈아치우는 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공교육을 바라보는 학부모의 시선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란 말조차 학부모에게는 사교육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공교육의 변명으로 읽히기 쉽다.

교육부 사람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미래 교육이 앞당겨졌다고 말한다. ‘일찍 찾아온 미래’ 같은 근사한 표현도 즐겨한다. 변화 속도가 빠를 것이란 전망에는 동의하지만 장밋빛 미래라는 어투는 거슬린다. 앞으로도 사교육에 밀리는 공교육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효용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새 판을 짤 생각이라면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공교육의 민낯이 너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도경 사회부 차장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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