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핵화 로드맵이 북·미협상 재개 출발점

국민일보

[시론] 비핵화 로드맵이 북·미협상 재개 출발점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

입력 2020-07-14 04:01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북·미 협상 재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내부 결속에 집중하던 북한은 최근 대남 강경 공세를 펼치며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원칙적 입장을 확인하며 북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또한 최선희, 스티븐 비건, 김여정 등 양국 고위 당국자들이 주고받은 설전은 향후 재개될 북·미 협상에서 양측이 치열하게 맞붙을 것임을 보여줬다.

북·미 협상의 교착상태는 미 대선이 실시되는 11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 재개를 위해 양측이 선제적·전향적 조치를 취할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 관계를 내세우며 북한 문제가 자신의 재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불신하는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국면에서 유연한 입장을 선제적으로 보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핵 문제를 미국의 전략적 이익보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선을 위해 오는 10월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그런 주장에 동조하며 경계심을 드러내는 워싱턴 정가의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운신 폭을 한층 더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미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협상 진전을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유인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작년 10월 스웨덴 실무협상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기 전까지 비핵화를 논의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따라서 선제적 조치 없이 북·미 대화 재개를 언급하는 미국 입장에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한 평양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비핵화 관련 논의를 재개하기보다는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 차기 미 행정부와의 협상 재개를 위한 포석으로 보다 유용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은 북한이 내부 결속에 집중하며 북·미 협상 재개 움직임을 계획대로 추진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다. 평양은 올 하반기 존재감 부각을 위해 제한된 수준의 도발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미 대선 전후 향상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과시하며 대미 협상력 제고를 도모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한 기회의 창은 2020 미 대선 이후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망은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국인 한국에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남·북·미 중심의 북·미 협상 2라운드 재개를 위한 준비 작업을 본격화해야 한다. 북·미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양국의 일치된 입장을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북한을 설득 및 압박해 협상 재개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두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출발점, 즉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북한의 양보 없이는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함으로써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는 동시적·단계적 원칙에 기초한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진할 명분과 공간을 만들어줄 것이다. 나아가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한 초기 상호 조치의 성공적 이행은 북·미 협상 2라운드의 진전을 담보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남·북·미 협상 2라운드가 다가오고 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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