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온라인 시대, 강요당한 침묵

국민일보

[돋을새김] 온라인 시대, 강요당한 침묵

신창호 사회2부장

입력 2020-07-14 04:02

지난 7일 미국 월간지 ‘하퍼스매거진’에는 ‘정의와 공개토론에 대한 서한’이란 제목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부제는 ‘자유의 부재(不在), 다른 관점에 대한 불관용’이었다. 글은 다수가 가진 의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온라인을 통해 공개 망신을 주거나 신변까지 찾아내 보복을 가하는 행위가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에는 영미권 작가와 언론인, 학자 등 150명이 서명을 했다. 대표적 미국 진보지식인인 언어학자 놈 촘스키, CNN방송 앵커 파리드 자카리아, ‘해리포터’ 작가 JK 롤링 등의 이름이 보였다.

1850년 창간한 하퍼스매거진은 가장 오래된 월간지 중 하나로, 수많은 역사의 변곡점에서 중요한 견해를 표방해온 잡지다. 애국주의가 미국을 장악했던 1950년대 말 처음으로 베트남전 반대 의견을 밝힌 것을 비롯해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지형에 국한되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지식인의 표현장 역할을 해왔다.

20세기 말 선진 몇 개국에서 시작된 인터넷혁명은 21세기도 어느덧 5분의 1이 지나가는 이 시점엔 전 세계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산업 정치 경제 문화는 물론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모든 일상생활까지 온라인화된 지금은 민주주의의 과잉일까, 아니면 민주주의의 과소일까. 보통 사람들의 여러 견해가 스스럼없이 직접 분출된다는 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과잉이라고 하는 게 맞는다. 그런데 이 견해들이 하나의 생각, 하나의 사상, 하나의 입장으로 사상 유례없이 빠르게 정리되고, 나머지 소수는 완전히 소멸해 버린다는 점에선 민주주의의 과소라 해야 할 듯하다.

소수 견해가 그저 버려지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다수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학대받고 보복당하며 낙인 찍히기 일쑤다. 소수 의견을 말하거나 기술한 사람도 공격당한다. 신상이 털리고, 털린 신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널리 알려지며, 온갖 험담과 언어폭력을 당해야 한다. 이런 세계에서 다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는 아예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강요당한 침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급속성장기의 전부를 군부독재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이라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 시절 우리는 스스로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만 겉보기에라도 평범한 척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한 말이 갑자기 불온 사상이 되던 그때, 대다수가 물리적 폭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루크스는 권력의 근원을 폭력이라 정의했다. 인간 사회가 현대화될수록 직접적 폭력은 간접화되고, 그 정도에 따라 권력도 변한다고 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직접적 폭력으로 복종시키는 권력이 1차원적이라면, ‘때리지 않고’ 말 듣게 만드는 방법, 즉 법을 통한 지배가 2차원적 권력이다. 3차원적 권력은 강압적 폭력 없이도 ‘저 사람 말은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민주주의 권력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시대라는 지금도 침묵의 강요는 다른 형태로 전화(轉化)해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다수가 된 의견·사상·입장이 소수를 아예 존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화된 세상에선 이 행위가 너무나도 쉽게 이뤄진다. 다수는 익명성의 ‘날개’를 달고, 소수를 향해 거침없이 공격을 감행하고, 소수는 자멸할 때까지 공격당하고 침묵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해야 한다.

교과서에서 우린 민주주의의 정의를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고 배웠다. 결론이 다수의 것일지라도 소수를 존중하고, 그들이 필요 충분하게 말하도록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자유가 과잉이 된 이 ‘글로벌 온라인’ 세상에서 진짜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지고 서로 다른 견해가 존중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신창호 사회2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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