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천박한 조문 전쟁 끝내야 한다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천박한 조문 전쟁 끝내야 한다

입력 2020-07-14 04:01

조국 전쟁에 이은 조문 전쟁은 우리 정치와 열성 집단의
천박함과 비겁한 낙인찍기로 무책임성 드러내

정의만 앞세우고 내로남불 식 대응 해왔던 진보 권력
오만의 시간은 끝나고 성찰의 시간이 왔음을 인정해야

이 정도면 가히 조문(弔問) 전쟁이다. 또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지난해 조국 전쟁에 이어 또 다른 전쟁 시리즈의 제작을 예고한다. 장례 절차가 끝나도 2차 가해와 관련해 정치권이, 양쪽의 ‘∼빠’들이 나서서 의도적인 싸움을 부추길 것이 뻔하니 그렇다. 조국 전쟁의 과정에서는 서로가 악다구니로 증오와 혐오를 내뱉었다. 거의 배설 수준이었다고나 할까. 양쪽이 개혁이니 법치니 정의니 공정이니 내세웠지만, 그런 속셈이 아니었다는 건 보통사람들은 다 안다. 서로 고통을 주려고 깊숙이 상처만 들쑤신 꼴이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 절차와 조문을 둘러싼 생경한 싸움은 지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기술력과 의료진의 사투로 코로나19에 잘 대처해 왔지만 정치와 정치적 리더십, 집단적 의견 표출 방식은 아직 미성숙, 무책임, 비겁함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나 일부 집단이 그려내고 있는 풍경은 천박함이 가득한 사회가 아니라고 부정할 자신을 갖지 못하게 한다.

사람의 죽음을 놓고 편이 갈려 싸우는 사회가 정상인가. 애도와 명분, 명분을 가장한 정략과 당파 이익을 교묘하게 얽어서 싸우는 행태가 정치인, 정치에 몰입한 열성적 지지자들이 할 일은 아니다. 그건 ‘더러운 전쟁’이다. 더러운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면 마치 정체성이 없거나 배신자 대열에 합류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했어’라며 SNS에 올리고, 댓글로 확인받으며, 퍼나르면서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모양이다.

더러운 전쟁이 일어나는 건 사회의 인식 수준이 미성숙할 때이다. 특히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특정 집단이나 특정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낙인을 찍으려는 교묘한 방법이다. 혐오와 배척의 배설이고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행위다. 무엇보다 책임소재를 가리는 것을 무력화하고 무책임의 확산을 조장한다. 더러운 전쟁의 피할 수 없는 과정이고 결말이다. 이번에도 피해자를 둘러싸고 비슷한 조짐이 이미 시작됐다.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 측이 기자회견을 했다. 성추행은 지속적이고 위력이 있었다고 했다. 정확한 진상을 밝힐 것도 요구했다. 이런 진술과 주장이 제기됐으므로, 다행스럽게도(?) 더러운 전쟁을 끝낼 기회를 갖게 됐다. 극단적 선택으로 공소권은 없어졌지만 진상은 밝히면 된다. 그게 우리 공동체가 공감대를 형성한 피해자중심주의와도 흐름을 같이한다. 피해자가 고소한 즉시 서울시에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된 정황도 조사해야 한다. 이건 2차 가해를 넘어선 심각한 범죄 행위다.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보 진영은 도덕적으로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 이 건을 일반화할 수 없지만 무슨 일만 터지면 내로남불 식 대응을 해온 결과다. 진보 진영은 그동안 도덕적 우위로 시민들로부터 권력 운영에 대한 위임장을 받았다. 그걸 무기로 상대편을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패거리로 규정했으나 더는 그런 꼼수 같은 정략이 통하지 않게 됐다. 더구나 조국 전쟁에서 봤듯 ‘무조건 우리 편이 정의’라는 프레임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때의 정의로움이 오만함과 철벽 기득권으로 변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성숙과 무책임, 비겁함으로 치달을 게 뻔한 조문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영악스럽게 무책임의 극대화로 본질을 흐리고 정파적 이익을 챙기려는 정치꾼들에게 활동 무대를 만들어줘서는 안 된다. 아마도 여기서 밀리면 절대로 안 된다는 ‘~빠’의 주장은 더 거세질지도 모른다.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면 또 폐족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조국 전쟁으로 진보 진영이 얻은 건 뭘까. 검찰 개혁이 제대로 가고 있나, 법무행정의 권위가 섰나? 오히려 검사들만 패가 갈려 국가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도만 뚝 떨어졌다. 정치 개입으로 검찰 독립성 확보도 후퇴했다. 여기저기서 깜냥도 안 되는 이들의 죽창가만 소리가 높다. 그런데도 조국 전쟁은 주인공들을 바꿔가며 시즌2로 진행 중이다. 이게 자기 정파·조직 이익이 우선인 조국 전쟁의 결말이 돼가는 듯하다.

애도의 시간은 가고 진상규명의 시간이 왔다. 진보 권력에 대입하면 오만의 시간은 끝나고 성찰의 시간이 온 것이다. 어쩌면 진보 진영의 격렬한 내분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단지 진영 내 권력 싸움일지, 성찰의 시간으로 다시 국민의 시선을 모을지는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

편집인 mhkim@kmib.co.kr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