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 뿌리는 교만, 자신이 하나님되어 판단하고 정죄

국민일보

‘자기 의’ 뿌리는 교만, 자신이 하나님되어 판단하고 정죄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13> 자기 의

입력 2020-07-15 00:06 수정 2020-07-1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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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앞줄 가운데)와 예수군사 사관학교 수료생들이 2015년 4월 수료식 및 감사예배를 드리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의 말씀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 이상 듣고 읽었을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 아들이 자신의 분깃을 아버지께 미리 받아 먼 나라에 가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 재산을 낭비한다. 그리고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몹시 어려운 처지가 되자 남의 집 돼지를 치는 자로 전락해 아버지를 생각한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 잘못을 구하고 아들이라고 할 면목이 없어 품꾼으로 받아 달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집으로 향한다. 노심초사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달려가 목을 안아 입을 맞추고, 아들은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며 회개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긴다. 살진 송아지를 잡고 다시 얻은 아들로 인해 즐거워한다.

큰아들이 밭에서 일하다 돌아오는데 집 근처에서 풍악과 춤추는 소리가 들린다. 영문을 몰라 하인에게 물으니 하인은 동생이 돌아왔다고, 건강하게 돌아온 동생을 위해 살진 송아지까지 잡았다고 대답한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아버지께 주장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아버지 명을 어기지도 않고 아버지를 섬겼습니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염소 새끼라도 한 마리 줘서 친구와 즐기게 하지 않더니 창녀들과 놀아나다 아버지의 돈을 다 허비한 동생을 위해 송아지를 잡으셨습니까.”

그러자 아버지는 자상하게 말씀하신다. “얘, 큰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성실한 큰형의 ‘자기 의’를 볼 수 있다. 매사에 성실하고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속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볼 때 귀감이 되는, 착하고 바른 사람이다. 예의범절과 교양을 두루 갖춰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본인도 내심 만족하며 자만한다.

또한, 교회에서도 별 무리 없이 자기의 자리를 알며 단체의 룰을 잘 따른다. ‘작은아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 속에 감춰진 의가 마구 솟구쳐 나와 주위를 더럽힌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올바르게 처리되기를 바라신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본질을 잃고 형식에 치우친 점과 겉으론 선하지만, 그 선을 행하기 위해 눌러놓았던 감춰진 악을 하나님께 고백해 처리 받아야 한다. 자신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처리되지 않은 교회 안의 성실한 ‘큰형’은 안타깝지만, 하나님과 너무 멀리 있는 자다.

예수 믿는 자를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달려간 사울의 살기등등한 모습도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고 확신하는 자기 의에 기인한다. 그 사울의 자기 의가 우리 속에도 타오르는 불처럼 이글거리고 있다. 올바른 지식, 즉 하나님을 경험함으로써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하나님을 만들어 섬기며 자기 소견 대로 행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자기 의는 자기 소견에 따라 옳게 여기는 것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세속적이다. 자기 의로 행하는 자는 열심을 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본인은 잘하고 있다고 기세등등해 하지만 사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대적자 위치에 있다. 예수 믿는 자를 잡으러 달려가는 사울처럼 말이다.

하나님 의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에 열심을 내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행하고 있는가. 심지어 상대가 자기 기준 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이 하나님이 돼 판단하고 정죄한다.

어떤 사람은 드러내 가르치려 들고 어떤 사람은 고상한 척 마음으로만 판단하고 표현을 하지 않으니 겸손한 줄 안다. 속으로 온갖 판단과 정죄를 다 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 드러내 가르치려 하는 자나 속으로 판단하는 자나 다 교만한 것이다.

착하고 겉으로 경건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것이, 아니 속기 쉬운 것이 자기 의다. 자기 의의 뿌리는 교만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같이 자기가 행하는 것이 의가 돼 자신을 남들보다 낫다고 여기는 교만한 마음이 자기 의의 마음이다. 그래서 주님은 독사의 자식, 회칠한 무덤이라고 그들을 질책하셨다.

종교인은 율법 아래 있어 은혜를 아직 모르는 눈먼 자들이고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나는 어떠한가. 여전히 누더기 같은 더러운 ‘자기 의의 옷’을 입고 행하며 오히려 형제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계시의 눈이 열려 보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더러운 옷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주님의 의를 덧입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한다. 주님 앞에 낮아진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형상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감방생활 힘들어 극단적 선택… “너는 할일 있으니 내려가라” 음성

소년원 집회 중 당시 부산영락교회 윤성진 부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감방에 재소자들과 정자세로 앉아 있는데 신비한 성령 체험을 했다. 지붕이 열리고 태양이 보이는데 태양 아래 흰옷을 입은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35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2019년 2월 윤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부산영락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 주셨다. 말씀을 전하고 치유 사역을 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4년 김천 소년교도소에 수감되기 전 부산구치소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80년대 초는 물자가 귀한 시대라 구치소 안은 각박한 삶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실로 빨랫비누를 다리에 묶고 생활하는 사람, 세숫비누에 구멍을 뚫어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다밥’을 먹었지만 늘 배가 고팠다. 가다밥은 일본식 표현으로 틀에 찍어낸 밥을 말한다. 당시 재소자 식량급여 규칙에 따라 재소자를 등급으로 나눠 가다밥을 주었고 등급이 낮을수록 적은 양의 밥을 받았다. 그마저 작업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2시간 정도 먼저 식구통에 던져 줬다. 틀에 찍은 가다밥은 여름에는 너무 말라서, 겨울에는 너무 차서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년교도소 생활의 열악함은 구치소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이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는 ‘개털’, 부모님이 버린 법무부 자식이란 뜻의 ‘법자’로 불렸다. 배고픔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든 시절이었다.

신입으로 들어가 발가벗고 검신(檢身)을 받았다. 담배 같은 부정 물품을 숨겨 들여왔는지 항문까지 샅샅이 검사했다. 또 규율이라는 명목으로 기합을 받기도 했다.

신입은 머리를 짧게 밀고, 공포스런 분위기 속에 늘 머리를 숙이고 뒤꿈치는 들고 다녀야 했다. 들어가자마자 버릇을 잘 들여야 한다며 재소자들의 구타가 계속됐다. 발로 가슴을 심하게 맞고 목울대를 손으로 맞기도 하며 발로 밟히기도 했다.

재소자뿐만 아니라 교도관의 구타도 있었다. 고망대(감시대)에서 술을 먹고 근무를 하다 떨어져 다리를 저는 ‘삐가다리’라는 별명의 교도관은 재소자들을 구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짬밥 부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크리스천 교도관도 있었다. 그분은 신우회 회원으로 면회도 오지 않고 어렵게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짬밥을 얻어다 나눠 주곤 했다.

그래도 구타와 기합이 계속되는 생활은 견딜 수 없었다. 하루는 수감생활이 너무 괴로워 수감자를 감독하는 간이 사무실인 관구실 유리문을 향해 달려가 머리로 받았다. 그리고 깨진 유리 조각을 잡고 목을 그으려는 순간 교도관에게 붙잡혔다.

교도관들은 다른 수감자들의 본보기로 나를 발가벗긴 채 ‘죽음의 나무’로 불리는 곳에 거꾸로 매달았다. 그러고는 굵은 전기선을 두 겹으로 꼬아 만든 채찍으로 때리고, 기절하면 물을 뿌려서 깨웠다. 깨어나면 전기 총을 몸에 가져다 대고, 또다시 때리기를 반복했다. 그 후 온몸이 묶인 채 독방에 갇혔다.

다시 동료들이 있는 방에 돌아와서도 살기 싫어서 빵 비닐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노끈처럼 튼튼하게 꼬아 엮은 다음 화장실 천장에 매달고, 양동이를 밟고 올라가 삶을 마감하려 했다.

그렇게 죽음의 직전에 이르렀는데 건물 20층 정도 되는 거구의 흰옷 입은 분이 보이고 음성이 들렸다. “너는 올 때가 안 됐다. 내려가라. 할 일이 있으니 내려가라.” 그리고는 노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정광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