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상황에는 하나님이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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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상황에는 하나님이 개입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14> 하나님만 바라보라 하심은

입력 2020-07-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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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가운데)와 예수군사사관학교 소속 목회자들이 2013년 4월 인천 옹진군 영흥도 수련원에서 ‘총진군대회’를 갖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어디 가든지, 어디 있든지 사람 보지 말고 하나님만 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상황 속에는 하나님이 개입돼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과 나, 그리고 (사람, 문제 등의) 상황이라는 삼각 구도로 돼 있다. 우리 옛사람은 모든 일을 상황과 나만의 일로 여겨왔다. 사람과의 관계가 얽히면 사람과 상대하려 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문제만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항상 상황 뒤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 어떠한 일일지라도 먼저 하나님께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은 문제나 상황, 사람을 상대하지 말고 그 문제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허락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의중을 알라’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자신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기에 때론 손해도 보고, 고통도 당하고, 누명도 쓸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그 뜻을 이루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그 모든 뒷감당, 손익 계산은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는 “복음 들고 아골 골짝까지 가오리다”라고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정작 십자가를 지게 되는 상황에서는 회피하려 하고 머뭇거린다. 선뜻 십자가를 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재빨리 세상 법을 적용해 옳고 그름과 손익을 계산한다. 사람을 품지 못하고, 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나 희생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하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손해도 보고 상대방의 필요도 채워 줘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하늘의 법을 따라 사는 삶이다.

우리 옛사람은 손해 보거나 이용당하는 일에 요동한다. 화가 치밀고 상대에게 그대로 갚아 주고 싶은 죄가 마음에 들끓는다. 이럴 때 주님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이것을 들춰내서 내면을 치유받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도 하다. 죄를 다스린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어둠을 쫓아내고 그 죄가 나의 감정을 주관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뜻이라면 강도 건너야 하고, 불 가운데도 지나야 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는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하물며 손해 보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 주는 희생은 당연하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을 보고 세상 법을 따르는 것은 당연히 할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길이니 주님만 바라보라고 하신다.

주님은 “너를 더욱 나의 사랑으로 물들이기 위해 너에게 큰 사랑을 주기 위해 그것을 허락했노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세상의 마음으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길이다. 나는 죽고 오직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실 때에 기쁨으로 갈 수 있다.

또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은 늘 그 마음에 ‘하나님만을 두라’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하면 온통 마음이 그 사람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그 사람이 모든 일의 동기가 된다. 이처럼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 아닌 다른 무엇이 담겨 있는가. 그것이 바로 우상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리는 어둠이다. 그것은 자녀일 수도 있고, 남편이나 아내일 수도 있으며 자신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몇 년 전 어느 날 나는 마음이 울적해 그 마음을 달래려 쇼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나는 그동안 마음이 울적하면 쇼핑으로 마음을 달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님 이름을 부르면서 여전히 나의 만족을 위해 살고 나를 위로하는, 내가 우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의 언행을 깊이 살피지 않으면 너무도 많은 부분이 어둠에 가려져 자신도 속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영의 눈이 열려 자신의 깊은 곳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쌓아온 바벨탑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감사해야 한다.

세속적인 가치관은 소유에 있고 하늘의 가치관은 마음 회복에 있다. 주님께서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골 3:2) 하늘에 속한 새사람은 살아가는 목적과 방법이 달라야 한다. 우리는 내면의 회복, 즉 형상 회복에 목적을 두고, 내면에 건설되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스크림처럼 금방 녹을 달콤한 세상 사랑에 시선과 마음을 뺏기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자. 세상의 방법과 추구했던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늘의 가치관을 가진 주님의 신부가 되자.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교도소 예배 중 “하나님, 살아 계신다면 만나 주세요” 외침에 눈 부신 빛


소년교도소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다시 살아났다. 기적의 체험을 통해 10대의 어린 나이에도 사는 세계와 다른 어떤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생명조차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안함을 느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영적 세계의 훈련을 시키며 나를 다듬어 가고 계셨다. 주의 종이 된 지금은 교정 선교를 통해 갇힌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은혜를 주셨다.

몇 달 전 한 청년이 교도소에서 편지를 보냈다. 깨알 같은 글씨를 보고 그만 울컥했다. “목사님이 지은 ‘아가페 사랑’이라는 찬양 가사 중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가망 없어 보이고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상황과 상태일지라도 그 속에 실오라기 같은 소망을 보는 눈이 있어 포기하지 않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우리 주님처럼’의 구절에서 은혜를 받고 살 소망을 갖게 됐습니다.”

살 소망이 없어 죽음을 선택했던 자가 이제는 영혼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사역에 쓰임 받고 있다는 것에 날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감방 안에서 살아난 나를 위해 동료 수감자들은 측은히 생각했다. 줄에 감겼던 목의 멍든 자국을 가리라며 수건을 줬다. 당시 나는 ‘삐삐선’(군용 통신선)을 만드는 공장으로 출역을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했다. 수감자들은 그곳에서도 작업을 많이 하지 않고 의자에서 쉴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출소 후에도 죄성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사회에서 얼마 있지 못해 폭력 절도 등으로 교도소에 들락거리는 생활이 계속됐다. 그리고 22세에 보호감호 7년, 실형 3년6개월 등 총 10년6개월 장기형을 받았다. 청송1교도소, 청송1·2감호소를 거쳐 사회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담장 안의 삶을 살았다.

보호감호는 사회보호법에 따른 보호처분 제도로 죄에 대한 실형이 아니다. 재범 가능성이 있는 자의 보호 및 사회 복귀를 위한 직업훈련을 목적으로 보호감호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었다.

애초 이 제도는 사회 적응과 자립을 돕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형 집행 후에도 격리 수용돼 이중처벌, 인권유린의 문제가 있었다. 2005년 폐지된 보호감호제도로 인해 7년이라는 시간을 담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결코 우연은 없으리라.

1995년 6월 전국교도소 신우회 연합예배를 청송 1교도소 안 다메섹교회에서 드렸다. 탤런트 정영숙씨를 비롯한 연예인 신우회와 연합으로 드리는 예배였다. 당시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진실하게 믿지는 못했다.

그런데 통성 기도 시간이 됐다. 어떤 힘에 이끌려 간곡하게 목청을 놓아 큰소리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살아 계신다면 만나 주세요.” 한참을 기도하는데 눈 부신 빛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날 체험이 있고 난 뒤, 일주일 만에 나는 하나님을 만나는 강력한 체험을 했다. 그해 6월 19일, 그날도 어김없이 저녁 8시에 취침에 들어갔다. 초여름이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밤이었다. 8명의 감방 동료들은 평소와 같이 속옷 차림으로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식 환자처럼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어떤 힘에 이끌려 성경책을 양손에 잡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엎드렸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기도가 반복적으로 터졌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예수님 인도해 주세요.” 5분 후 자리에 누웠지만, 성령님의 강한 역사로 또다시 “성령님, 도와주세요. 성령님, 인도해 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몇만 볼트일 것 같은 강력한 전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눈에는 환상이 펼쳐지고 입에서는 여러 가지 방언이 터져 나왔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내가 사랑하는 자라”는 4번의 음성이 들려왔다. 부드러운 성우의 음성보다 맑고 온유한 목소리였다.


정광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