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민주노총 위원장의 승부수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민주노총 위원장의 승부수

입력 2020-07-21 04:01

무산된 ‘코로나 극복 노사정 합의안’,
대의원대회 소집해 승인 구하고 사퇴 배수진 쳐
강경파 저지 속 중대기로에 선 민노총,
투쟁 일변도 벗어나야 사회적 신뢰 얻을 수 있어
분열과 갈등 아닌 연대·협력 다하는 조직으로 탈바꿈되길

국내 코로나19 사태 발생 6개월이 됐다. 미증유의 상황 속에서 일상은 뒤흔들리고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실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매달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실업급여 지급액은 삶의 고통을 웅변해준다. 특히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은 직격탄을 맞아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들에겐 질곡의 세월이다. 특수고용직 종사자 등 취약계층에 1인당 150만원을 지급하는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접수를 어제 마감한 결과도 고용 충격의 심각성을 실감케 한다. 정부 예상(114만명)을 크게 웃도는 160만명이 몰렸다고 하니 말이다. 노동자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한계 상황에 내몰린 곳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코로나 사태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40여일간 논의 끝에 어렵사리 노사정 합의안이 도출됐건만 막판에 무산된 것이 못내 안타깝다. 지난 1일 협약식에서 노사정 대표자들이 서명할 예정이었으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조 내 강경파의 저지로 참석을 못 해 불발된 탓이다. 하지만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김 위원장이 직권으로 오는 23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노사정 합의안의 승인을 구하는 승부수를 던졌기 때문이다. 추인에 실패하면 자신을 포함한 지도부가 사퇴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쳤다.

과거와 사뭇 다른 민주노총 수뇌부의 결기다. 김 위원장이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올린 63쪽의 대의원대회 회의 자료를 봐도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한 각오가 엿보인다. 그는 양대 노총 차원을 넘어 노조 바깥의 노동 약자 보호에 역점을 뒀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간 표방해온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민주노총에 100만명 넘는 조합원이 있지만 한국 사회에선 전체 노동자의 90%가 노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들 취약계층을 보듬고 껴안아 불평등을 치유하는 일이야말로 제1 노총인 민주노총이 해야 할 책무라는 점에 공감한다.

노사정 합의안은 전문과 5개 장, 67개 조항으로 돼 있다. 가장 강조된 게 일자리 지키기다. 이 가운데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의 고통 분담’이란 항목에 경영계는 고용이 유지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노동계는 경영 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휴업 등 고용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적극 협력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를 놓고 내부 강경파는 해고 금지 등이 빠진 합의는 ‘자본과의 야합’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해고 금지를 명문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영계가 그에 상응해 임금 동결이나 삭감을 요구하면 노동계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추후 이행 상황을 점검하면서 합의안 내용을 실효성 있게 보완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선언적 부분이 많긴 하나 구체적 내용도 적지 않다.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 연내 수립, 아프면 쉴 수 있는 제도인 상병수당 도입 논의 본격화 등이 담긴 것도 큰 소득이다. 정부가 어차피 알아서 추진할 것인 만큼 합의문이 필요 없다는 식이라면 무책임하다. 노사가 모두 참여해야 무게감이 실리고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릇에 담을 내용도 달라진다. 조직 내부 논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의원 찬반 토론회가 오늘 유튜브로 생중계된다니 소모적 싸움이 아닌 건강한 토론의 장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대중의 신뢰를 얻는다. 이번 대의원대회는 실로 중요하다. 노동운동 향방을 가를 일대 전환점이 될 수 있어서다. 위원장 승부수가 통하면 22년 만의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결실을 보게 된다. 반대로 추인에 실패하면 민주노총은 사회적 고립 등의 후폭풍에 직면할 것이다. 노사정 합의안 전문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위기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저력을 증명해 왔다. 오늘 또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이제 우리 노사정은 연대와 책임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합의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고, 현장에 실천·확산함으로써 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과 발전의 길로 함께 나아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전문대로 새 역사를 만들지는 23일 표결에 참여하는 대의원 1400여명의 손에 달렸다. 아무쪼록 분열과 갈등이 아닌 연대와 협력을 다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길 바란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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