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정의연과 탈북민단체 사이에서

국민일보

[국민논단] 정의연과 탈북민단체 사이에서

구정우(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

입력 2020-07-27 04:07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부정 의혹에 나라가 벌집이 된 지도 두 달여. 이용수 할머니의 절규가 생생하고, 보수·진보 시민단체의 몸싸움이 여전히 끔찍하다. 내 편 감싸는 정부·여당에 실망했지만, 시민운동의 권력화를 돌아볼 흔치 않은 기회도 얻었다. 정치 권력과 엘리트 시민단체가 뭉그적거리는 동안 검찰은 소매를 걷었다. 압수수색을 벌여 증거를 확보하고 줄소환을 시작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수사는 답보에 빠졌고, 폭풍의 핵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환장 한 번 받지 않았다. 정의연의 버티기도 한몫했다. 검찰이 대규모 인사를 앞두고 법무부 장관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세청은 ‘고의성은 없었다’며 진작 정의연에 면죄부를 줬다. 회계 처리 오류 부분을 재공시하라는 솜방망이가 다였다. 어물쩍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비등했다. 외부감사를 통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거다. 정의연은 즉각 거부했다. 시민단체에 악역향을 끼칠 거라 항변했다. 투명해질 수 있는 손쉬운 길이 이내 닫혔다. 도덕적 우월주의와 자기 확신의 결과다. 어쭙잖은 정의감이 국민 신뢰를 밀쳐냈다. 주무 감독 부처인 국가인권위원회의 대응은 어땠을까. 사무 점검은 하겠지만 2년에 한 번씩 정해진 기간에 하겠다고 했다. 회계감독은 권한 밖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과연 적절한 대응이었을까.

지난 16일 통일부가 아주 센 ‘사무 검사’ 카드를 꺼냈다. 대상은 엘리트 단체 정의연이 아니다. 95개의 영세한 탈북민 단체다. 통일부에 등록된 북한 인권 및 탈북민 정착지원 단체 중 25곳을 우선 선정해 사무 검사할 예정이다. 나머지 단체도 2차, 3차로 차근차근 ‘손봐줄’ 계획이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삐라 날린’ 두 개 단체를 법인 취소하고 잔뜩 고무된 분위기다. 북한 인권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명백한 차별과 탄압이라는 거다. 통일부에 등록된 400개의 단체 중 왜 우리만? 대답은 삼척동자도 안다. 북한 김여정을 건드린 ‘괘씸죄’다. 2018년 판문점 선언에 역행한 죄다. 윤미향 의원 같은 든든한 후견인 하나 만들지 못한 것도 죄라면 죄다.

국제사회가 술렁였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21일 탈북민단체 조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설명을 요구했다. “국제 인권법을 존중하라”며 일침을 놨다. 국경을 넘어 정보를 보내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 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역시 강한 유감을 표했다. 명백한 단체 결사의 자유 침해이며, 한국 정부가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전혀 나서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했다. 통일부는 접경 지역 주민의 생명권이 먼저라며 아무리 유엔이라도 어쩔 수 없다고 버틴다. 이번 점검은 남북 관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족도 곁들였다. 한데 탈북민 단체에 대한 유례없는 사무 검사를 왜 하는지 분명한 설명이 없다. 김여정과도 관계가 없다고 하니,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뭔가 불공정하다는 느낌이다. 거대 정의연은 사무 점검을 피했고, 영세 탈북민 단체는 유례없는 사무 검사의 철퇴를 기다리고 있다. 권력에 가깝고 힘 있는 시민단체에 더 강한 도덕성과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나. 작고 힘없는 시민단체는 보호해 주고 격려해야 하지 않나. 선택적 정의의 민낯인가. 항변이 나올지 모른다. 정의연은 식민주의에 분연히 맞섰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다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탈북민 단체들은 인권유린의 희생자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테러국가에서 신음하는 우리 동포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다고!

프랑스 정치사회학자 토크빌은 19세기 초 미국을 여행하면서 시민단체의 역할에 혀를 내둘렀다. 취약한 개인을 묶어주는 힘으로, 국가의 횡포에 맞서는 버팀목으로 그들을 봤다. 시민단체의 견고함이 민주주의를 살린다 믿었다. 우리의 경험도 그랬다. 정대협과 정의연의 위안부 운동, 탈북민 단체의 북한인권운동, 기층 시민단체들의 개혁운동이 민주주의를 싹틔웠다. 민주시민의 덕목과 보편적 책임을 일깨웠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시민사회 내의 불공정과 불평등은 이래서 위험하다. 자율성과 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거대 정부의 편협한 정의론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다. 권력과의 함수에 따라, 남북 관계의 변수에 따라 우리의 정의관이 휘둘린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민주주의의 시계는 언제든 거꾸로 갈 수 있다.

구정우(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