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신뢰 없는 주류 교체는 공허하다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신뢰 없는 주류 교체는 공허하다

입력 2020-07-28 04:01

조국 사태로 시작한 집권 세력 신뢰 상실의 조짐이
윤미향·검찰 지휘 태도·다주택 보유 고위공직자 등으로 인해
국민 신뢰 붕괴 단계로 이어져 주류 교체 성공했을지 몰라도
이는 새 기득권이 옛 기득권을 대체하는 단순 손바뀜일 뿐

시작은 조국이었다. 지난해 가을 이 공동체를 폭격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는 신뢰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노미 상태에 가까운 충격을 줬다. ‘아빠 찬스’ 정도의 애교스러운 표현으로 지나갈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아빠 찬스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해줄 것인가는 사람마다, 시절마다 다를 수 있겠다. 여론이 분노한 지점은 그가 그때까지 해온 언행과 가족 일을 처리한 정황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었다. 그 행위가 법을 현저히 또는 가볍게 위반했거나, 편법 수준이었거나, 이런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진보 세력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입만 열면 외쳤던 정의나 공정, 평등이라는 가치에 대한 신뢰를 배반했다는 게 핵심이다. 위선이었다.

조국 사태는 진보가 주류가 된 이번 정권을 신뢰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줬다. 신뢰 상실 현상은 이른바 양쪽 ‘~빠’들이 달라붙어 나라를 두 쪽 낸 정치적 현상과는 별도의 일이다. 대통령과 집권 세력, 386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 상실이 시작될 것이라는 어렴풋한 조짐이 보였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신뢰 상실의 조짐이 이제는 상실을 넘어 신뢰 붕괴의 초입 단계로 들어선 듯하다.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의혹은 검찰이 발 빠르게 압수수색을 하는 등 수사를 진행하더니만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 앞에서 딱 멈췄다. 국세청은 정의연에 대해 회계처리 오류 재공시라는 비교적 가벼운 조치를 내렸다.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둘러싸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 구체적 사건에 관여한다는 비난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정권이 지난정권 고위 공직자들에게 숱하게 들이댄 게 직권남용 혐의였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 의혹 사건에 대해서 여권은 일사불란하게 ‘피해호소인’이라는 낯간지러운 용어를 사용했다. 결국 2주일이 지난 뒤 표현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대통령은 아직도 말이 없다.

이런 사안들은 모두 행위자들의 의도가 있다. 그동안 해왔던 말이나 주장이 행위나 결과와 다를 때 보통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신뢰에 금이 간다는 표현은 이때 쓴다. ‘이니 맘대로 해’라는 무한 신뢰의 표현은 아득한 옛말이 됐다. 신뢰는 사회의 응집력을 높이고 민주사회를 뒷받침하는 근본 요소다. 정치 경제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결정적 기능도 한다. 그래서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이다. 사회적 자본은 물적·인적 자원과 함께 경제 성장의 주요 요소로 꼽힌다.

문재인정부 들어 22번의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근본 원인은 정책이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다주택 고위 공직자들에게 보유 주택을 팔라고 지시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는 걸 보라. 그들이 똘똘한 강남 한 채를 포기하지 않는데 어떤 신뢰가 생기겠는가. 아무리 센 정책을 내놓아도 시장이, 보통 사람들이 불신하는 정책은 하나 마나다. 집값이 내려가겠느냐는 민주당 의원의 실언은 정책을 내놓는 이들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 거다. 이쯤 되면 내부에서도 신뢰 붕괴 현상이 발생한 거다. 그러니 이곳저곳에서 내지르는 자극적 주장이 횡행한다. 신뢰의 상실 또는 붕괴는 극단적 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공동체는 곳곳에서 양극화의 폐해를 겪고 있다. 사회가 역동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리더십은 사라지고 주장과 선동만 주목받는다. 무책임의 극치로 치달으니 미래세대의 불안이 더 커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류 교체를 목표로 한다. 상당히 이뤄졌다. 과거에 진보 세력의 말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지금은? 주류 교체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신뢰를 동반하지 못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신뢰 없는 주류 교체는 공허하다. 그건 증시에서 꾼들이 짜고 거짓 정보와 공시로 한탕 해 먹고, 다른 세력이 물량 받아 또 다른 거짓 공시로 더 높이 주가를 끌어올린 뒤 내다 파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선의의 개미 투자자들만 피를 본다.

신뢰를 동반하지 못한 주류 교체, 옛날 기득권에서 새로운 기득권으로 단순 손바뀜 현상만 일어나는 것 아닌가. 헛된 명분과 주장만 있었지 실용이 없어 망해버린 조선의 당파 싸움도 이랬을 게다. 신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김명호 편집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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