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가까이 머물수록 거룩함과 사랑, 경건이 몸에 배어

국민일보

주님 가까이 머물수록 거룩함과 사랑, 경건이 몸에 배어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15> 향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난다

입력 2020-07-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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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가 지난해 12월 경기도 고양 일산서구 다메섹지역아동센터에서 열린 ‘학부모 초청의 날’ 행사에서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어느 날 환상 속에서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큰 영광스러운 빛 앞으로 한 신부가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신부의 모습은 소박하고 평범해 보였다. 약간 더러워진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산처럼 큰 빛을 응시한 채, 흔들림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빛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신부가 빛 가까이 갈수록 신부의 더러움과 정결하지 못한 모습은 조금씩 엷어졌고, 가까이 갈수록 더더욱 거룩하고 정결한 모습을 덧입으며 빛에 동화돼 갔다.

급기야 빛 속으로 사라져 빛과 같이 됐고, 그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멀리서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행여 우리가 세상에 취해 신부 단장을 게을리하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다시 한번 아버지 집을 기억하라고 천사들을 동원해 들려주시는 주님의 응원가 같았다.

우리가 빛 되신 주님 앞에 머물면 머물수록 정결하게 된다. 더 깊이 주님 가까이 갈수록, 주님과 친밀할수록 우리는 더더욱 거룩함을 덧입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주님과의 깊은 친밀함은 성막의 구조로 볼 때 지성소의 영역이다. 우리는 모두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지만 개인의 영성에 따라 차별이 있는 예배와 기도를 드린다. 즉, 하나님이 받으시는 아벨의 예배와 받지 않으시는 가인의 예배가 있다.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인간의 창조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잘못되면 인간의 존재 목적을 상실하므로 그 가치가 없어진다.

주님은 어린 신앙인, 즉 뜰 영역의 기도와 예배에서 조금 자란 성소의 영역, 더 깊은 지성소의 영역으로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기를 원하신다. 당신과 더욱 깊은 사랑을 나누기 원하신다. 그래서 빨리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벗어나라고 독촉하신다. 우리는 마당만 밟는 뜰의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당신에 대한 경외심 없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 모습에 분노하시며 말라기를 통해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이는 지금 하나님을 알고 교회에 열심을 내지만 자기 부인이나 마음의 청결에 관심 없이 세상 법을 적용해 사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영화롭게도 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해 세상의 것, 물질이나 명예, 나의 어떠함 등으로 기뻐하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생각이 허망하고 마음은 어두워져 미련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교회에 나오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것을 구하며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이 주인 돼 자신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지 반문해야 한다. 혹시 주님 오실 날이 머지않았다고 신부 단장을 해야 한다고 외쳐도 감각 없이 세상에 젖어 사는 교회 안의 사람이 내가 아닌지 겸허하게 점검해 봐야 한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참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께 가까이 머무는 자에게는 주님의 모습이 배어 있다. 주님께 가까이 갈수록 주님의 모습이 투영되기에 손짓 하나, 몸짓 하나, 언어 하나에도 그분의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겸손과 사랑과 경건이 묻어난다. 향 싼 종이에 향내가 나듯이 말이다. 그런 사람은 존재 자체가 메시지가 되므로 많은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그 존재의 정도 만큼, 이 땅의 것을 누리게 된다. 누린다는 것은 흥청망청 허비하고 사람 위에 군림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스리며 자유한다는 것이다.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몸이 아파도 슬퍼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멸시와 모욕을 당해도 그것으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신앙 성숙의 기회로 삼아 다스리며 누린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이미 차원이 다른 삶을 산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세속적인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늘의 것보다 아직 땅의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분주하다면 하나님이 말씀을 하셔도 듣지 못한다. 귀와 눈이 하나님께 향할지라도 마음이 세상에 빼앗겨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께 돌판을 받아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했다.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고 함께함으로 하나님의 거룩의 빛이 덧입혀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그분의 성품이 자연히 덧입혀진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가. 지금 당신에겐 어떤 하나님의 성품이 덧입혀 있는가. 향을 싼 종이에서 향내가 나듯 주님의 향이 나는가. 그래서 자신의 주변에 주님의 향이 번져 가고 생명의 역사가 있는가. 오늘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교도소 수용자·교도관 3000명에게 복음 증거… 통신으로 신학 공부

1995년 6월 19일, 하나님과의 강력한 만남이 있고 난 뒤 나의 감방 생활은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다.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을 만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담장 안에 있었지만,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 속에 속사람이 강건해져 갔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던 자의 마음에 사랑의 싹이 트니 옆의 수용자를 섬기며 돌보기 시작했다. 주어진 운동 시간 20분 동안 물통과 쓰레기통을 들고 나가 운동장 화장실을 맨손으로 청소했다. 운동장의 쓰레기를 주우며 기도했다. “하나님, 제 마음을 닦아주셔서 온전히 하나님 마음을 닮게 해 주세요.”

수용자들은 1주일에 한 번씩 20분간 공용 목욕탕에서 씻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거동을 못하는 환자 동료들을 씻기고 업고 다녔다. 정작 시간이 부족해 씻지 못한 나는 방에 돌아와 화장실에서 찬물로 목욕했지만, 마음속에 기쁨과 감사가 넘쳤다.

혈종암으로 병사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하나님께 맡겨놓고 하나님 뜻대로 살길 기도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삶에 감사했다. 그리고 2년 후 하나님께서는 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다.

교도소와 감호소 안에서 많은 체험을 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약 3000명의 수용자와 교도관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다. 입술로 늘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라는 신앙 고백을 하며 전도했다.

그 당시 교도관과 수용자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나는 귀하고 소중한 영적 체험을 통해 그곳에서 주님이 부르신 사명 훈련, 제자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의 커리큘럼 안에서 다듬어져 갔다.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를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하고, 통신으로 신학을 공부했다. 2003년 5월 1일, 드디어 출소했다. 하나님께서는 검열 교도관을 신우회 사람으로 예비해 주셨다. 하나님과 깊은 교통 속에서 만난 체험을 그날그날 기록한, 나에게는 보물과 같은 30권 정도의 노트를 빼앗기지 않고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그때 가지고 나온 글은 목사가 된 후 성도들을 일깨우는 영적 책으로 묶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영감을 받아 책을 쓰는 기초석이 되고 있다.

그날 내 손에 들려진 것은 감호소 안에서 10년 동안 일해 번 30만원과 노트가 전부였다. 전 재산인 30만원으로 같이 수용 생활을 했던 형제들에게 훈제 닭 15마리와 영치금을 넣어 줬다. 남은 것은 차비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진리이신 예수님이 변화되고 새롭게 거듭난 나를 인도해 주시고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신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월은 많이 바뀌었다. 10년 만에 나온 세상인지라 차비가 얼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부산역에서 택시로 40분 되는 거리를 한나절이 넘게 무거운 짐을 들고 걸었다. 무거울 때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기도했다. “주님, 다시는 교도소에 가고 싶지 않아요. 교도소에 선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세요. 내게 주신 은혜를 그곳 형제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집에 도착했지만, 새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지 말고 신학 공부했으니 서울로 가라”며 내쫓았다. 깜깜한 밤 동네에 켜진 붉은 십자가를 보며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찾았다.

문이 열린 지하 교회에 들어가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나님 감사해요. 저를 사용해 주시니 감사해요.” 오랜 시간 기도 중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서울로 올라가라. 너를 통신 신학 공부시켜준 곳으로 가라.” 그리고 무작정 연고도 없는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광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