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협치의 역설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협치의 역설

입력 2020-07-29 04:01

여당은 야당의 협조에, 야당은 여당 양보에 방점
애당초 협치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문화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주저없이 선택하는 것이 다수의 역할이자 숙명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며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 하물며 국회에서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만든 법이라면 준수하는 게 법치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국회에서 통과된 개개의 법률은 헌법재판소의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지킬 의무가 있다. 세상에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은 없다. 그럴 거면 차라리 만들지 않는 게 낫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지난 15일 발효됐다. 법은 시행에 들어갔으나 법을 집행할 인원과 기구는 없다. 공수처는 법에만 존재할 뿐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다. 법에 따르면 진작 출범했어야 하나 현재로선 언제 출범할지 아는 이가 없다. 공수처는 미래통합당이 야당 몫 후보추천위원을 추천하지 않으면 구성할 수 없는 구조다. 공수처장은 후보추천위원 7명 가운데 6명의 찬성으로 추천되는데 통합당이 야당 몫 2명을 추천하지 않을 경우 정족수 미달로 추천위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통합당은 공수처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 무한정 공수처 설치를 지연시킬 모양새다. 법을 지키면서 얼마든지 대통령의 코드인사를 막을 수 있는 장치와 수단이 마련돼 있는데 이를 마다하고 굳이 비법(非法)의 길을 가려 한다. 앞으로 통합당이 자당의 입장에 반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브레이크를 걸면 21대 국회 또한 정쟁으로 허송한 20대 국회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내외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난 2분기 3.3% 역성장했다. 정부는 3분기 반등을 전망하고 있으나 희망고문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설상가상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중의 신냉전까지 가열되면서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불안정·불확실 요소가 하나 둘 늘고 있다.

비상시국을 맞아 국민 앞에 내놓는 여야 공통의 화두가 협치다. 문재인 대통령의 21대 국회 개원연설은 협치로 시작해 협치로 끝을 맺었다. 문 대통령은 20대 국회의 가장 큰 실패를 ‘협치의 실패’로 지적하고 21대 국회에선 반드시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의 키워드 역시 협치였다. 너나없이 협치를 이야기하지만 문 대통령이 말하는 협치와 주 원내대표가 말하는 협치의 의미는 지구와 화성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여당의 협치는 야당의 협조에, 야당의 협치는 정부·여당의 양보에 방점이 있다. “대통령이 말하는 협치는 대통령과 민주당이 하는 일에 그저 반대하지 않고 찬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냐”는 주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에 여야의 거리감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이렇게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니 협치는 백년하청이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청와대 회동을 할 때마다 단골 합의사항으로 발표하는 게 여야정 상설협의체 구성이다. 하지만 여야정 협의체가 가동된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협치가 만장일치는 아니더라도 민주당과 통합당의 합의에 의한 의정을 의미한다면 그건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쫓는 것과 매한가지다. 선거의 의미도 반감된다. 지금 민주당과 통합당은 검경 개혁, 부동산 정책, 행정수도 이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맞부딪치고 있다. ‘노무현표’ ‘문재인표’ 정책이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인 후년의 대통령 선거가 임박할수록 여야의 대치 전선이 확대되는 건 명약관화다.

최선의 의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회 활동이다. 딜레마는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때 생긴다. 그래도 소수가 수긍할 때까지 설득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느냐 사이의 갈등이다. 공수처의 경우 통합당이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문재인정부 내에 설치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자니 20대 국회에서 그 난리를 친 의미가 없어진다. 행정수도 이전 또한 문제를 제기한 이상 이번 기회에 가든 부든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한다. 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선택을 주저해선 안 된다. 그것이 다수의 역할이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이 두려우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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