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일본은 왜 미투운동이 약한가

국민일보

[한반도포커스] 일본은 왜 미투운동이 약한가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입력 2020-08-03 04:04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추정상’ 성추행 사건으로 자살하면서 큰 충격을 던졌다. 국내 ‘미투(MeToo)’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저명 인사가 성적(性的) 비리로 심판받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성평등은 그만큼 중요한 인권 문제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과 매우 대조적이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자살한 정치가는 있지만 성추행 문제로 자살한 경우는 전혀 없다. 바로 엊그제 터져나온, 전직 총리 아들인 일본 후생노동성 남성 부대신과 여성 정무관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뉴스도 흔해빠진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흐름을 탔던 미투운동도 일본에서 만큼은 각광받지 못했다. 방송국 인턴으로 일하다 성폭행을 당한 이토 시오리의 경우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사건 발생 당시 검찰은 혐의 부족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토 시오리는 2년 후 공개적으로 법적 소송에 나섰고 일본 미투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가해자는 TBS 방송기자로 아베 신조 총리와 가까운 인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2차 가해에 시달려 영국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결국 재판에서 이겼지만 아직도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영국 BBC 인터뷰에서 언급한 “일본 사회에서 여성은 누구나 성추행을 겪을 수 있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올해 6월 그녀는 자신을 조롱하는 트위터를 올린 2차 가해자인 만화가 등을 대상으로 770만엔(약 85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에는 잘 정비된 남녀고용기회균등법, 다양한 상담 창구와 개인 프라이버시 보장, 높은 수준의 여성 취업률, 표현의 자유와 언론 감시 등 성적 불평등을 억제할 요소가 잘 갖춰져 있다. 2016년 소수자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막고자 제정된 헤이트스피치대책법도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일본은 미투운동이 약할까.

우선 미국과의 차이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애당초 미투운동은 미국 내 영화산업 제작자와 여배우 간 갑을 관계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국도 연극·영화계에서 미투 선언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미투운동이 연쇄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연예계조차 미투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 연예계가 유달리 상하 조직 관계가 강하고 집단주의적 폭력성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토 시오리가 공개적인 미투 선언을 한 것도 그나마 프리랜서로서 소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본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던 여직원은 직장 상사의 성희롱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돌림을 당해 회사를 그만뒀다. 집단주의가 강한 일본에서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두려워하게 된다. 이토 시오리는 2018년 3월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적 피해를 고발한 여성에 대해 일본 사회가 가혹한 집단 린치를 서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토 시오리의 고발 이후 인기 블로거가 직장 상사의 성추행을 고발했지만 미투운동은 약화일로를 걸었다. 오히려 자신도 업계에서 퇴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에선 한국과 같은 저항 문화를 보기 드물다. 일본인들은 비판하고 투쟁하는 모습이 올바르고 멋지다는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다. 일본 진보 언론인조차 한국의 촛불시위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일본 역사상 민(民)이 관(官)을 이긴 적이 한 번도 없다. 한국은 시민운동이 강하지만 일본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일본 왕실전범에 따르면 남자만 천황이 될 수 있다. 스모로 불리는 일본 씨름판에서 여성의 출전은 금기 대상이다. 한·일 간에 분명히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최근 양국 갈등이 심화된 근본 배경일지도 모른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